Sean 글 보면 제가 엄청 스페인어를 잘 하는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십수년 전에 딸과 같이 스페인어를 반년 정도 배우긴 했어요. K학원 특성 상 온갖 어려운 문법을 속성으로 배웠고 단어도 꽤 많이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스페인어 특유의 복잡도인 여섯가지 동사 변화 x 시제 + 젠더 등으로 인해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읽기만 가능한 정도였습니다. 그조차 몇년간 안해서 거의 까먹은 상태였고요. 장롱 스페인어였죠.
아들 군대가고 까미노 걷게 되겠다 싶어, 듀오링고를 시작했습니다. 단순 반복 훈련인지라, 하루 15분 정도만 했는데도 효과가 컸습니다. 인칭, 존칭 따라 동사 변화가 입에서 편히 나왔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안 빼먹고 400일 넘어도, 하루 15분 정도론 진도가 느린가봅니다. 과거형을 아예 말하지 못하는 채로 떠났습니다. 과거형 관련해 급히 문법만 들춰보고 갔지만, 현지어로 말할 일 있을땐 머리가 하얘지면서 한마디도 못했어요.
그럼에도, 반쪽짜리 문형으로도 현지인들과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랑 아들이랑 까미노 걷고 세비야에 왔어' 이 말을 못해서, "나랑 아들이랑 까미노 걸음, 이후에 세비야 다님" 뭐 이런 식이었죠.
원래 대화를 좋아하는 스페인어권 사람들이라 초보적 말만 해도 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순례자가 이용하는 숙소나 음식점조차 영어 한마디 안 통하는 상황이니, 몸짓발짓에 단어 위주 문장으로도 먹고 싶은 것 먹고, 앉고 싶은 곳 앉고, 계산하고 싶은 대로 계산할수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요즘 스페인 숙소엔 무인 데스크가 상당히 많은데, 몇번이나 체크인이 안되는 상황에서 스페인어 통화를 해서 겨우 입실할수 있었기에 영어만 쓰는채로 갔으면 상당히 골치아팠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ps.귀국해서 다시 듀오링고를 하는데, 재개 이틀만에 과거형 나오더라고요. 아, 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