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걸은 까미노 프리미티보
까미노 가보지 않아도, 까미노 조개와 화살표는 본적 있으실겁니다.
가기전 마음엔 브랜드나 상표 같았지만, 까미노 걷다보면 완전 다른 느낌입니다.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중세의 순례자에게 화살표는 신의 음성이었을 겁니다. 종교가 없는 제게도 신의 숨결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까미노는 1차원 세상입니다.
매일 25km x 1m 의 가상적 파이프 속에 삽니다. 몇십 분에 한번, 가야할 갈래로 잘 분기해야 하는데 이때 화살표가 큰 역할을 합니다. 지도 앱이 있지만, 힘들게 걷다보면 폰 꺼내기도 은근 부담이고, 프리미티보 깊은 산중에선 통신이 되지 않아 지도가 대체로 안 뜹니다.
가는 길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홀연 나타나 정확한 분기점을 알려주는게 바로 까미노 조개와 화살표입니다. 심지어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슬슬 확신이 사라질 때 쯤 귀신같이 나타나서, '그래, 이길 맞아'라고 알려줍니다. 심지어, 길을 놓쳐 다른 길로 샜더라도, 원래 까미노로 복귀하는 화살표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실수하는 대목에 대한 안배죠. 위치와 타이밍이 기 막힙니다. 대중의 지혜이자, 빅 데이터의 아날로그 구현체입니다.
순례자들이 까미노 화살표에 본원적 애정을 갖는 것도 아마 그럴것입니다. 항상 길에서 우릴 지켜줬던 화살표죠. 인생에도 이런 화살표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