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wny Taewon Kim Jul 14. 2024

[Tony] 살 빠지는 까미노

길에서 길을 묻는 까미노: 삶에 필요한 것이란

모험을 마친후,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젊어졌어요'입니다.


살이 좀 빠졌고, 피부 색도 살짝 짙어진 탓이겠지요. 제 스스로도 달라진 몸을 느낍니다.  

출발 당시도 체중관리가 된 상태지만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숫자였고 얼굴에 붓기도 있습니다. 마칠 무렵은 좀 더 생기가 있네요.  

떠나는 날과 산티아고 입성한 날 모습

매일 많이 걷기도 했지만, 식사도 소박했습니다. 


점심때 카페나 바르(bar)를 열기만 하면 정말 다행입니다. 바게뜨 샌드위치를 사 먹을 수 있으니까요.  

4일 정도는 자체보급을 해야만 했습니다. 인적 드문 길이니, 하루 구간 동안 음식 사먹을 마을이 원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날 빵과 초리조, 잼 또는 과일 정도를 미리 준비해서 갑니다. 그보다 황당한건 있어야할 유일한 카페가 닫은 경우죠. 비상용으로 초코바 몇 개는 항상 지니고,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초콜릿이나 달달한 간식을 챙겨 다니니 그런 걸로 때우고 걸었습니다.

음식을 못 사먹는 날엔 재료를 가지고 조립해 먹음

저녁이 더 재미나요. 

대략 4시부터 8시 사이엔 모든 레스토랑이 주방을 닫습니다. 음식을 아예 안 팔아요. 시에스타 풍습입니다. 스페인 여러 번 가봤지만, 죄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였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8시 주방 열 때까지 기다려 식사하는건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늦게 먹는것도 배에 부담스럽지만, 지친 순례자는 9시나 10시면 곯아떨어지거든요.  


따라서 3시 이전에 식사가 가능한 날은 늦은 점심을 제대로 먹고, 저녁은 감자칩과 과일, 맥주 등으로 간단히 때우고 잡니다. 아주 작은 마을에 묵는 경우, 음식 파는데가 아예 없으니 숙소에서만 식사가 가능합니다. 이런 곳은 순례자를 위해 7시나 7시 반에 주방을 오픈해줍니다. 이런 날은 점심을 스낵으로 때우고 저녁은 제대로 식사하고 잠들죠. 즉 하루 한끼 제대로 먹고 나머지는 간단히 먹습니다. 칼로리 소모는 엄청난데 먹는 양은 단촐하니 살이 안 빠질 수 없지요. 

문어 숙회와 거의 유사한 갈리시아 전통 요리 

까미노 초기엔 식사 옵션이 적어 섭섭했습니다. 스페인까지 왔는데 뭔가 맛난 음식을 먹으리라는 기대에 배신당했으니까요. 


하지만 며칠 지나면서 섭섭함은 깨달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삶에 진짜 필요한게 뭔지 명료해집니다. 

점심 굶어가며 걷기가 다반사니 음식을 팔아만 줘도 고맙습니다. 찬 샌드위치를 먹게 되는데, 누군가 더운 음식을 주면 감격스럽습니다. 주방을 일찍 열어 신선 뜨끈한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입니다. 


거친 길에서 진정 필요한건 딱 빵 한덩어리와 물 한잔이란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은 감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