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별점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wny Taewon Kim Aug 28. 2021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

고전문학, 신화, 회화로 만나는 리얼 지옥 가이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매력 뿜뿜한 노래, '지옥송'이라 불리우는  'Hell to your doorstep'의 절정부 가사는 이렇습니다.

선물할게 끔찍한 지옥 너희들에게.

선한 주인공 단테스가 메탈릭 연주 위에 그 간의 울분을 쏟아내며 복수를 다짐하는 감정 표현이 압권인 대목입니다. 영어가사는 좀 더 생생합니다.

I will carry hell to your doorstep
 you will rue the day.

지옥을 질질 끌고 와서 편히 살고 있는 너희들 현관문에 박아버리겠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어 가사보다 역동적입니다. 번안할 때 샤우팅과 라임을 택하는 과정에서 디테일을 희생한걸로 여겨집니다.

한국어 가사가 정적으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한국어 청자가 듣기엔 지옥을 선물한다는 내용이 덜 무섭지 않을까까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영어 청자의 정서보단 말이지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지옥이란 단어는 건조한 추상으로 남았지 오감적 실체감은 사라졌으니까요. 왕이란 단어처럼요.


김태권, 2021


이유는 모르겠지만 김태권 작가는 지옥에 대해 빠져들었고, 글로 지옥 여행을 가이드합니다. 지옥을 가보지도 않은 무자격 가이드이지만, 철학과 미학의 전문성을 토대로 동서고금의 문헌과 그림을 뒤져 형체를 더듬습니다.


신앙이 없는 저로선 지옥이란 개념이 종교만큼이나 와닿지 않는 하나의 메타포어인지라, 책 읽으며 인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지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뜬금포 질문을 군데군데 쏟아 놓습니다.

사탄은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전직 천사가 많아 잘생겼을 수도 있음)

지옥의 온도는? (더운지방은 뜨거운 지옥을, 추운 지역은 얼음지옥을 최고로 침)

냄새 지옥은 왜 없을까? (냄새는 시간 지나면 역치가 올라감)

이런 장난기 어린 디테일을 궁싯거리다보면 더 근본적인 문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악마는 악인을 벌준다.

이 당연한 명제는 선한 신의 의지란 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만일 착한 사람 상주는게 신의 의지라면, 악한 사람 벌주는것도 신의 뜻입니다. 다만 악마가 이를 행할 뿐입니다. 이러면 악마는 열악한 지옥이란 근무환경에서 신의 세계관에 봉사하는 고된 노동자라는 아이러니한 결론이 납니다.


연옥과 윤회를 제외하고 기독교적 지옥의 무기수감도 문제입니다. 언제 지옥의 형이 끝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오직 고통의 크기만 다르지 형기는 영겁이라면 처벌의 해상도는 매우 낮아집니다. 기왕 영원히 갖힐 것이면 철저히 악한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무한대에는 무슨 수를 곱해도 무한대잖아요. (1x∞ = 100x∞)

 

저자는 꼼꼼히 다양한 문헌에 기반하여 가이드를 합니다. 비기독교인에 모바일 시대에 사는 제입장에선 지옥은 사회적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법규가 없을 시절 선악을 구분하고 상호작용적 결과를 상기시키는 개념적 인프라 같은 거죠. 나쁜 일을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리라는 규범의 시각화입니다.


그래서 지옥의 서술적 형태는 문화와 시대를 고스란히 담을겁니다. 고통의 종류와 단죄의 카테고리는 철저히 그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합니다. 저자 말대로 종교의 창시자는 부가적 권능으로 지옥설계권을 갖게 됩니다.

 

결국 앞에 몇가지 적은 지옥의 논리적 모순은 틈새에 존재합니다. 문화 내부에선 식별하기 어렵고, 문화 외부에선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재미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있다면, 천국이라고 만족스러울까 싶습니다. 모든게 흡족하고 문제가 없는 삶. 처음 얼마는 좋지만 금방, 매우 권태로와지겠지요.

Heaven for climate
Hell for company
(날씨를 원하면 천국을,
친구를 원하면 지옥을0

결론적 느낌입니다.

지옥은 시대의 거울일 뿐이다.
천국없이 지옥없고 지옥없이 천국없다.    

 

Inuit Points ★★★★☆

저자 김태권 작가는 십자군 이야기로 필명을 떨친 후 '불편한 미술관',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 연작을 냈습니다. 그의 독특한 유머는 즉시 헛웃음이 나든지, 한참 지나 피식 웃는 매력으로 유명합니다. 지옥의 음습함을 지우려 한권 내내 분투하는 그의 유머 노력도 볼만한 포인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한 대목이 있습니다. 지옥과 상관없지만, 그림 설명 듣다 스토리 찾아보고 눈물이 왈칵 나버렸습니다.


녹록지 않은 주제를 적정한 거리두기와 보이스톤으로 한권 써내려간 저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7 Power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