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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Sep 04. 2021

불안



제게 가장 가슴 깊이 남아있는 뮤지컬은 렌트입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불꽃같은 열정의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사랑, 좌절 이야기입니다. 시놉시스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매력이 있는데요. 젊음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 특유의 불안정성입니다. 매우 극적입니다.


렌트의 원작은 파리 배경의 '라 보엠'입니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젋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불안정하고 불안합니다.


Alain de Botton, 2004

(원제) Status anxiety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원제는 '신분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는 현대인의 불안 중 큰 요소로 지위 추락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꼽았고, 그 생각들을 날렵히 적었습니다.


저자는 지위에 대한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꼽습니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그리고 불확실성입니다.


사랑 결핍은 인간의 근원적 공포인 고립에서 외연이 확장된 근심입니다. 속물근성도 사회적으로 무시되고 외면되는 걱정이지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의 중간 쯤 됩니다.


저자는 기대에 꽤 공들여 글을 적었습니다. 평등하다고 느끼는 준거집단 내 구성원에 대한 질투도 한 몫합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부유해졌기에 기대가 늘어나고, 늘어난 기대만큼의 상대적 궁핍감이 지위 추락의 불안을 야기합니다.


책을 통틀어 가장 재미낙 느꼈던건 능력주의입니다. 귀족 같은 신분사회의 구태를 청산하고 능력에 따라 노력한만큼 대우를 받는 현대사회. 합리적인듯 하지만 그림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능력 있는 사람이 부유하고 신분 높은게 당연하다고 전제하면,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게으르고 무지하고 품성이 나쁘지 않냐는 사회의 은근한 시선에 답을 할 엉뚱한 의무가 지워집니다. 알랭의 말처럼, 가난이 이미 고통인데 여기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집니다.


불확실성도 근심입니다. 인간도 세상도 변화가 무쌍한 세상입니다. 합리적 통제라는 신화는 '불운'이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운과 싸워 분투해야 하고 과하게 결과를 근심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충분히 재미납니다. 알랭은 다시 다섯 가지의 해법을 이야기합니다. 자기 판단이 중요하다는 철학, 의도와 결과를 비틀어 기대를 배반하게 만드는 예술, 시대따라 지배계급따라 지배적 기대와 기준을 바꾸는 정치, 세속적 지위와 영적지위를 분리하는 기독교,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대척점에서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보헤미아입니다.  


이중 보헤미아가 가장 재미납니다. 법률가, 기업가, 과학자가 아니라도 시인, 여행가, 작가도 의미있는 직업임을 증명하려 노력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머리에 라 보엠과 렌트가 생각났나봅니다.


Inuit Points ★★★★☆

책 읽다 든 생각입니다만, 지위에 대한 근심은 은밀하고 투명하게 세상과 주위를 덮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꼼꼼히 살펴보듯 그냥 훨훨 벗어나긴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보헤미안의 지혜처럼 누구로부터 인정받을지는 최소한 자기 선택입니다. 그 선택에는 스스로의 가치체계가 가장 중요하겠죠.   

  

제가 좋아하는 류의 책은 아닙니다. 게다가 아이돌같은 철학자의 글이라면 소설보듯 건성으로 보게 마련인데요. 개인적인 프로젝트인 '손 안가는 책읽기'의 일환으로 읽었습니다. 매번 보는 경영, 경제, 과학, 문화 등 실용성 위주의 편식에서 벗어나 보려는 계획이죠. 나름 재미났습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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