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위험해서 너무 좋은 이야기들
꽤 재미난 책을 만났습니다. 110명의 석학에게 한가지 질문을 합니다.
과학적으로 옳지만 윤리적, 정서적으로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이 짧은 질문 하나에 생각의 꽃이 만발합니다.
John Brockman, 2006
(원제) What is your dangerous idea?
낱글이라 어떻게 리뷰할까 생각하다 제가 인상깊었던 대목들 위주로 시상을 해봤습니다.
과학적으로 웃겼음 상: 고프리 밀러
'외계생명체가 있다면, 왜 그들은 안보이는가?' 라는 페르미의 역설에 한가지 답을 제시하는데 엄청 웃깁니다.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면 실체없는 생존과 번식의 신호를 수용하거나 쾌락을 위한 소비에 탐닉합니다. 실제로 지금 그런 경향이 보이지요. 만일 이 추세가 이어져 절멸하는게 인류문명의 목적지라면, 이미 앞서간 외계생명체도 번식이 멈춰 절멸했기 때문에 그들을 볼 수 없는거라고 주장합니다. 혹시 만난다면 엄청난 인격체간의 만남이 될거라고 하지요.
근거가 딱히 단단하지 않아보여도 매우 솔깃함: 티모시 테일러
뇌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인데, 그 근거자 재미납니다. 즉 인간이 직립을 하면서 아이를 빨리 낳아 밖에서 키우게 됩니다. 이 사실을 잘 파보면 뇌가 모체 밖에 나온 이후에 추가로 성숙과 생장을 하지요. 따라서 그 과정에서 유전체 뿐 아니라 문화가 코딩된다는 내용입니다. 즉 밈(meme)이 진(gene)과 공진화한다는 주장입니다.
으스스한 결론 상: 필립 짐바르도 & 데이비드 버스 (공동수상)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감옥실험의 연장선상에서 악과 영웅주의는 모두 평범하다고 말합니다. 즉 잠시의 용맹과 진정한 용기는 차이가 있으며, 상황이 주는 악이나 영웅주의는 평범한 속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버스는 더 급발진을 합니다. 진화과정에서 살인은 매우 유효한 전략이기 때문에 인류는 살인으로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인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과학적으로 아름다워 상: 스콧 샘슨
생명의 목적은 결과론적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주에 흐르는 에너지가 우리를 거쳐갈 따름이지요. 이는 물리학의 기본 명제입니다. 하지만 스콧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빛이다. 햇빛의 경유지기 때문이다." 과학이 시가 되는 순간, 아름답지 않나요?
뼈 때리며 웃겨 상: 폴 데이비스
지구가 온난해지는게 왜 나쁘냐고 말합니다. 기상 위기는 지구 역사에 걸쳐 늘 있었던 일이며 대수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냥 인류만 꺼지면 될일이고 지구는 끄덕 없다고 하지요. 맞는 말인데 좀 많이 대범하군요.
정치보단 과학이군 상: 그레고리 벤포드
환경 협약은 요원한 일이니 정치가를 배제하고 확실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두가지 제안합니다. 첫째, 곡식의 수확 후 잔여물을 바다 깊이 매립하면 탄소배출을 1/3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공구름으로 열대 바다를 덮으면 지구의 열을 포획하고 식힐 수 있다네요. 교토 의정서로 풀기 요원한 일을 과학이 해결할 수 있을 듯 해서 흥미롭습니다.
앗 깨달았다 상: 일런 앤더슨
뇌는 육체의 일부라는 흔한 주장입니다만, 저자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다 문득 깨달은게 있습니다. 마음의 상태와 육체의 건강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 몸을 움직이는 루틴이 명상과 자기수련의 일부가 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예전의 현자가 청소하고 농사짓는 단순한 일을 한 이유가, 몸을 이용한 마음공부였구나 싶었습니다.
나도 답을 모르겠다 상: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 대니얼 데넷
지금 트럼프주의자들이나 브렉시트주의자들처럼 점점 우매한 대중이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우리의 시대정신을 그대로 코딩해서 AI에 넣어둔다면, 한 100년 쯤 후엔 어떨까요. 상상력을 발휘했을 때, 동물에 가까운 육체의 후손과 지금의 그나마 정점을 찍은 합리주의가 구현된 정신의 후손 중 우린 누굴 응원할까요.
Inuit Points ★★★★★
110개 글이 다 재미난건 아니지만,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생경한 상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 독서가 행복했습니다. 책이 출간된지 약 15년입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은 이젠 주류적 생각이 되었고, 별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주로 유전자나 우주론 관련한 내용입니다. 제가 이 시점 놀랍고 흥미로웠던 어떤 주제는 다시 15년 흐르면 또 평범한 상식이 될테지요.
이런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다섯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