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대양족 오스트로네시아 이야기에 한참 빠져 살때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섬까지 길을 찾아 수천년을 이동한 그 장대하고 신비로운 스토리는 지금 생각해도 매혹적입니다. 곁가지로 환초(atoll)란게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었습니다. 산호초로 인해 고리모양의 섬이 생기는 현상이지요.
그 이후로 잊고 있다가, 글머리의 산호초 이야기로 시작해 홀딱 빠져 한권 내내 읽게 될줄 몰랐습니다. 지구 표면적의 0.1% 정도를 차지하는 산호초에, 해양생물 종의 1/4이 살고 있다는, 전혀 관심없었지만 갑자기 놀라운 사실에서 출발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요
Where good ideas com from: The Natural History of Innovation
Steven Johnson, 2011
'탁월한'은 너무 많이 갔고, 원제는 good idea입니다. 순간 반짝이는 찰나보다 더 긴 시간에서 뭉근하고 묵직한 임팩트를 의도한 형용사입니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까지 포괄하기 위한 포용력있는 단어지요. 그래서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원래 부제인 '혁신의 자연사'가 온전한 설명입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생기는 과정을 자연사에 대비하여 설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존슨이 자연사에 대비하는 개념은 일곱 가지입니다. 인접가능성, 유동적 네트워크, 느린 예감, 우연, 실수, 굴절적응, 그리고 플랫폼이죠.
이중 가장 제가 인상깊게 읽은건 인접가능성(adjeacent possible)입니다. 흑점의 발견이나 에너지 보존 법칙, 심지어 자연선택조차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동시에 발견했니다. 미분만해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따로 발견한걸 섞어서 쓰지요 요즘도.
이런 현상을 멀티플(multiple)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로 인접가능성을 설명합니다. 즉 어떤 지식은 선행지식의 기반하에서만 다음 발견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앞선 지식이 해결되자마자 동시 발견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다윈은 맬서스에 강한 영감을 받았고, 다른 학자 월리스도 맬서스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인접가능성의 문이 열려야 다음 방이 보이고, 그 열린 문으로 동시에 여럿이 입장하게 되는 거지요.
또 한가지 배운 점. 혁신의 자연사적 입장에선 탄소가 스타입니다. 지각 구성의 0.03%를 차지하지만 인체의 20%를 이루는 이유는 그 탁월한 연결성 때문입니다. 탄소 덕에 유기체가 생기고, 생명이 생겼고,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911 이전에 FBI의 두 군데 지국에서 비행학교 관련한 이상 기미를 감지했지만 테러를 예상하는데 실패한 이야기는 매우 선명히 기억될 것 같습니다. 조각 정보는 연결하고 모아야 그림이 보인다는 평범하지만 엄중한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니까요.
Inuit Points ★★★★★
재밌게 읽었지만 책의 번역은 정말 마음에 안듭니다. 오역도 많고 취중번역 같은 문장도 많습니다. 영어 원문을 대조하면서 봐야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실은 리뷰할 때 할말이 진짜 많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리하면서 보니 막상 그렇진 않네요. 혁신의 발생구조를 7개로 정리한건 이야기의 묶음이지 프레임웍도 아니고 어떤 논리적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진리생성적이고 교과서가 진리보존적이라면, 이런 정리적 서술은 진리기록적입 니다. 유통으로 치면, 지식의 소매상입니다. 그래서 꼭 뭘 크게 느끼고 배우기보단 전체적으로 재밌다는 인상과 자잘한 즐거움의 정서입니다.
별점 다섯을 줬습니다. 저는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고, 스티븐 존슨이라는 탁월한 이야기꾼을 발견한 소득도 컸습니다. 이 이의 작품을 몇 개 더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