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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Sep 24. 2021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

"어떤 남자 좋아해요?"
"재미난 사람이요."

외모, 키, 직업, 자산 같은 유형적 끌림말고는 꽤 많이 선택을 받는게 유머감각입니다. 


반면, 이젠 사라진 고대의 풍습쯤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 유년기 때 큰 형아 누나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학을 천마리 접고는 했습니다. 대중 가요에도 나올정도였어요. 뭔가 정성을 쏟는 일이긴 하지만, 어린 마음이 보기에도 쓸모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말을 하지 왜.." 


책 읽다 까마득한 학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위 두가지가 일맥상통하는 거구나하는 깨달음이 탁 생겼습니다. 


The generous man : how helping others is the sexiest thing you can do

Tor Norretranders, 2005


토르 뇌레트라네르스(Tor Norretranders). 이름을 외우긴 고사하고 보고 읽는 발음조차 입에 안 붙는, 스웨덴 저자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더 스마트하게 해줄 것이다'를 읽던 중 발견한 저자입니다. '깊이' 이야기가 꽤 인상 깊었습니다.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다소 비슷한 이야기가 중언부언 되는 감이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골자는 매우 또렷합니다. 

다윈의 위대한 발견은 진화지요. 다윈은 두가지의 진화의 추동력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자연선택,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성선택입니다.

  

자연선택은 환경에의 적응도가 높은, 적자가 생존한다는 원리입니다. 반면 성선택은 암컷에게 선택받은 숫컷만 유전자를 물려준다는 원리입니다. (인간처럼 임신과 양육의 부담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 암컷의 선택권이 우세합니다만 육아의 부담이 보다 균등해지면 양쪽 모두 선택권을 갖게 됩니다. 요즘 남녀가 특히 그렇지요.) 

이때, 우수한 유전형이라는 숨은 정보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표현형으로 잘 드러내는게 성선택의 핵심기제입니다. 여기에서 '깊이'가 나옵니다. 비싼 신호는 깊이가 있는 정보지요. 


따라서 유머는 깊이가 있는 정보입니다. 신체 에너지의 25%를 사용하는 뇌가 생존과 생활의 임무를 처리하고도 남는 프로세서 자원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한편 천마리 학은 노력의 증표입니다. 단순히 노력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양과 질에서 압도적 노력을 하는게 천마디 달콤한 말보다 나은 깊이 있는 정보가 됩니다. 

자연에선 공작새의 꼬리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생존에 거추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공작새는 쓸모없는 화려함을 뽐냅니다. 날지도 못하는 그 큰 꼬리를 달고서도 살아 있다는건 빠르고 강하다는 증거일수밖에 없으니까요. 여기까진 신호이론과 일부 궤를 같이 합니다만, 토르 또는 진화 심리학의 목적은 철학으로 가서 끝납니다.

왜 인간은 남을 돕는가?

자연선택에 적합한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선 남을 돕는게 친족을 더 많이 살려 유전자 레벨로 생존적합성을 높인다고 봅니다만, 사회적 실험을 해보면 반드시 친족이 아니라도 잘 돕는다는게 발견됩니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돕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역시 성선택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호모 제네로수스, 즉 베푸는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본능이 있습니다. 남을 돕고 베푸는 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창조행위가 모두 성선택의 비싼 신호 남기기의 부산물이니까요. 


Inuit Points ★★★★☆

결국, 핸디캡 이론과 선물 경제의 두 축으로 성선택적 본능이 문화와 베푸는 마음으로 바뀐 과정과 이유를 꼼꼼히 설명한 책입니다. 물론 15년 전 책이니 시차가 있어, 공작새 꼬리의 핸디캡 이론이나 성선택의 논의는 당시보단 더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가 공들여 신중히 논증하느라 들이는 에너지가 아까울 정도지요. 그 때문에 책은 중언부언의 늘어짐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보다도 한글 제목이 정말 어이없습니다. '사랑에 빠지면'은 특정시기에 개체간의 관계를 말합니다. '착해지는' 건 장기적 시간 상의 다양한 사회 행동을 포괄합니다. 책이 이야기하는건 사랑을 얻기 쉽게, 유전적 성향이 관대해지는 기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면 한글 제목은 로맨틱한 사랑의 뇌 활동 정도를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제가 토르를 몰랐다면 절대로 이 제목에 끌리지는 않았을겁니다. 반대로 이 제목에 끌렸던 사람은 '이게 뭔 x소린가' 싶을겁니다. 책의 제목은 핸디캡이었고, 신호를 주지 못하고 스스로 절멸로 몰아간 핸디캡이었나봅니다. 그 제목을 달고도 살아남아 베스트셀러가 될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고, 되려 절판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전 매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토르의 깊이론이 갖는 더 깊은 함의를 맛본점이 좋았습니다. 또 생각해본적도 없는 선물경제와 상품경제에 대해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호모 제네로수스 관점으로 비교하며 생각해 본 시간은 값졌습니다. 별 넷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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