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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Jan 07. 2022

부채, 첫 5천년의 역사

review

요즘엔 사어가 되었습니다만, 예전에 동네 가게는 외상이라는 이름의 신용으로 장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외상이란 개념이 꽤 연원이 깊고 다층적 의미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Debt: The first 5,000 years

David Graeber, 2011


인류학자가 학문적 연구와 증거로 경제사를 재구성합니다. 다소 도발적이지만 귀기울일만 합니다. 


물물교환은 없다

화폐의 기능 중, 교환의 매개가 있습니다. 예컨대 물물교환 경제에서, 나는 고기가 있고 신발이 필요한데, 신발 장인은 고기말고 쌀이 필요하다면 문제죠. 이 경우 물물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서, 화폐가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묻습니다. "진짜 물물교환이 있었는가?"


있긴 있었다

물물교환이 있었지만 우리 생각과 다릅니다. 이방인과의 경제, 대개 적과의 거래에 사용된게 물물교환입니다. 왜냐면, 지인집단 내에서의 경제는 외상, 즉 신용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위 사례라면, 내가 신발이 필요하면 먼저 갖다 쓰고, 나중에 신발장인이 고기 필요할때 내 고기를 주면 됩니다. 즉, 외상거래이며 신용 경제인거죠. 오히려 외집단, 신용이 전혀 없는 이방인이나 적과의 거래에선 물물교환을 해야합니다.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채에 대한 독특한 시각

따라서 외상은 신용이고 신용은 부채입니다. 그리고, '신세'라는 추상적 신뢰관계가 정량화되면 부채가 된다고 봅니다. 이 정량화의 매개가 주화, 코인, 또는 화폐입니다. 

 

화폐의 폭력성

저자의 관점에서 화폐는 폭력을 수반합니다. 거칠게 관계를 그리면, 국가는 군인을 보내 땅을 뺏고 광산을 얻습니다. 광산의 금속으로 주화를 만들고 군인에게 지급합니다. 군인은 주화로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삽니다. 국가는 다시 세금으로 주화를 걷어 들입니다. 죽 주화라는 내재가치가 없지만 국가가 보장하는 어떤 매개체가 한바퀴 돌아 경제를 돌려줍니다. 이 경우 주화도 부채였던겁니다. 국가가 지불을 보장한 부채. 


인간부채

여기서 좀 더 나갑니다. 과거엔 명예가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동서양 모두요. 심지어 어떤 시공간에선 노예는 모든 대우는 똑같지만 명예만 거세해도 산 송장 혹은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이 때 명예의 대속에는 특별한 화폐가 사용됩니다. 놋쇠막대기 등의 형태인데, 이 명예화폐는 신부값(bride price)을 치르는 결혼이나 살인분쟁등 사람 목숨의 사회적 해결책으로 사용합니다. 이 명예화폐가 부족해지면 매우 심각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자기 자식이나 자신이 직접 노예가 되어 대속해야하니까요. 그래서 노예 관습이 생깁니다. 명예화폐의 부족분을 때우는 인간화폐로 유동성을 공급하는거죠. 따라서 이런 노예화의 선결조건은 탈관계입니다. 가족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인간으로 보이고 범용적 화폐가 아니게 되니까요. 요즘 말로는 대체 가능(fungible)하게 만듭니다.  


종교

책이 마지막으로 다루는 범주는 종교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사회에 빚을 졌다는 '원초적 부채이론(primordial debt theory)'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부족 내 신용과 마찬가지로 신세짐, 은혜받음은 도덕적 부채입니다. 저자의 표현처럼, 예수는 스스로 십자가를 짐으로 사람들에게 영원한 도덕적 의무감을 부과하여 도덕적 채권자가 된 대속자(Redeemer)로 구원자가 됩니다. 이는 기독교 뿐 아니라 인도나 고대종교에서 흔히 쓰는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Inuit Points ★★★

책이 두꺼운만큼, 내용도 방대합니다. 반은 '오, 신기하다' 배우는 느낌과 사고의 전복이 강하고, 반은 좀 뜨악해서 설득당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전통적 경제사관에서 벗어나 이런 도발적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게 즐거웠습니다. 


솔직히 문장은 좀 성가스럽습니다. 인류학적 발견들로 경제학의 기존 시각과 거대담론을 까야하기때문에 논지전개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그래서 중언부언이 많습니다. 말의 거품을 걷어내고 담백하고 용감하게 나갔다면 완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처럼말이죠. 


그리고, 이책 덕에 유대인 학자들에게 막연히 느끼던 점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교정인데요. 학자적 양심이 있으니 거짓말까지 하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은연적이거나 노골적인 온정주의는 버리기 힘들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세한 온정주의가 쌓이면 유대인의 악한 시절도 꽤 많이 재포장이 되겠구나 상상해봤습니다. 아무튼 전 재미나게 읽었고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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