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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Feb 26. 2022

셜록홈즈와 기호학자

The sign of 3

이름도 괴상한 가추법(abduction). 

연역법, 귀납법도 종종 헛갈리는데 또 뭔 법이라니요. 하지만 가추법은 위력적입니다. 셜록 홈즈 추리법의 요체이기도 하니까요. 

어렴풋이 알지만 막상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가추법 관련한 책을 찾다 제목이 호기심을 잔뜩 끌어들입니다. 저항할 수 없이 사버렸습니다. 

Umberto Eco etc, 1983 


우선 책의 출간년도가 근 40년 전이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퍼스의 가추법과 홈즈의 추리능력과 매우 연관이 있다는 점애 여러 학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주목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주도적으로 엮은 움베르토 에코가 혼자서 '이거 연관이 있구나' 정리하던 중 세벅이 동일한 관점을 가진걸 알게 됩니다. 이어서 아무개, 저무개 같이 동일한 연관고리를 추적하는 학자들이 레이더에 잡힙니다. 그래서 각자의 논문을 한데 모아 엮은 책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홈즈=가추법'이란 학문적 공리를 성립시킨 학자들의 노고가 이책의 진미입니다. 짐짓 머뭇거리고, 신중하며 회의하지만 열정적입니다. 

홈즈가 가추법이었어! 

지금의 상식이 당시엔 가설이라 글들이 꽤나 번잡합니다. 게다가 말씀 많은 철학과의 논리학자, 기호학자 등이 다 한마디씩 하니 정신은 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융합과 상호교류가 책의 본령이란 말이지요. 가추법의 진가는 진리추구적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가지 논증은 이러합니다. (OF=관찰된 결과)

Rule +Case -> OF : 연역법
Case +OF -> Rule : 귀납법
Rule +OF -> Case:  가추법 

흔히, 연역법은 진리 보존적이라고 합니다. 빤한 결과를 확실히 냅니다. 귀납법은 진리 생성적입니다. 사례를 그러모아 법칙을 찾아냅니다. 반면 가추법은 진리확장적이라고 합니다. 틀릴 가능성이 있지만, 법칙과 관찰을 통해 진상을 밝혀냅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연역 > 귀납 > 가추 순으로 확실성이 감소합니다. 틀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진리의 생산성면에선 반대입니다. 자명하고 틀림없지만 가치가 매우 낮은 연역법보다 가추법은 가치를 생성합니다. 범인을 잡고 새로운 진리의 단초를 잡아냅니다. 


따라서 틀릴 위험이 적은 상태로 진리를 찾아내고 진상을 밝혀내면 가추법이 왕입니다. 그리고 그 전형적 모범이 셜록 홈즈고요. 홈즈는 소설속 인물이지만 이와 같은 추리법을 뇌에 탑재한 실존 인물이 꽤 있나봅니다. 책에 나오는 예는 셜록의 작가 코난도일의 스승 조셉 벨 박사가 현실판 셜록이었다고 합니다. 가추법을 정립한 논리학자 찰스 퍼스도 배에서 잃어버린 귀중한 시계를 추리를 통해 찾아냅니다.  


그러면 가추법, 성공하는 추리법의 핵심이 뭘까요.

첫째는 규칙(rule)의 풍성함입니다. 무용할지라도 평소에 부지런히 다양한 법칙들, 패턴들의 DB를 갖고 있어야합니다. 경험에 대해 열린 자세는 필수고요. 

둘째는 OF, 관찰입니다. 여기서 관찰은 꼼꼼하고 사물을 꿰뚫어보고 남과 다른 것을 보며 없는것을 주목할 수 있는 관찰력입니다. 

이 두가지에 더할건 오로지 인내심입니다. 수많은 법칙과 관찰을 무한히 맞춰봐야합니다. 그럴듯한 선이 나올때까지 점과 점을 잇고 지우길 반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falsifiability입니다. 그 가설이 맞는지 맞다면 무슨일이 생길지, 그를 부정하는 결과가 있는지를 살피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게 들숨날숨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추리의 대가가 됩니다. 추리를 해서 어따 쓰느냐고요? 이건 단지 추리의 문제가 아니라 압도적인 가치를 만드는 지식노동자 힘의 근원입니다. 


Inuit Points ★★★

논문 모음집이 그렇듯 딱딱합니다. 저자가 많고 관점도 딱 그만큼 다양해 주장이 흩날립니다. 그럼에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홈즈라는 아이돌이 진행을 버텨줍니다. 다양한 학문의 학자가 말하는 홈즈와 가추적 방법론을 더듬다 보면 깨닫는 부분도 많습니다. 


가장 크게 느낀건 이겁니다. 연역법이나 귀납법은 AI에 코딩하기 가장 쉽습니다. 가추법은 아직 아닐것같습니다. 아직은 유관한 데이터(relavant DB)을 선정하고 관찰(OF)의 초점을 정하는건 인간이 더 잘 할겁니다. 인간은 오류가 내장된(eror embedded) 본성을 지녔고 그래서 오류에 내성(error tolerant)이 있으니 말입니다. 당장 지식노동자로서 근원적인 힘이기도하고, 장기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울 버팀목인 가추법입니다. 읽는 동안 실존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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