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에서, 전략만큼 많이 쓰이면서도 실체는 모호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계획, 의도, 구상 등 미래 이야기면 전략을 막 붙입니다. 마케팅 전략, 출시 전략, 배송 전략, 상품 전략, 자금 전략, 끝도 없지요. 일부 숙려하여 만든 전략도 있지만, 대개 계획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만.
단지 말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속빈 '전략'을 진짜 전략이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전략 템플릿들과 전략적 사고방식 조금 배우고 기획일 몇번 해본 사람들이 '전략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실제로는 자기 영업을 열심히 뜁니다. 이들의 특징은 좋은 말의 성찬을 벌인다는 점이지요. 예컨대 한약방의 '전략'을 씁니다. "약 먹는 동안, 술 드시지 말고 무하고 이거저거그거요거 드시지 마세요.'
회사가 잘되면 전략가의 전략이 좋은거고, 못하면 회사가 당부사항을 어긴겁니다. 전략가는 잘못이 없지요.
Richard Rumelt, 2011
전략에 대한 책은 차고 넘치게 읽었지만 아직도 좋다는 평이 들리면 냉큼 손이 갑니다. 읽어보니 매우 재밌습니다.
진짜가 나타났다.
책은, 나쁜 전략이 뭔지부터 시작합니다. 나쁜 전략은 좋은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나쁜 전략 자체가 갖는 본질이 있다고 설파합니다. 어떤게 나쁜 전략일까요?
미사여구로 도배질 되어 있으며, 걷어내면 아무 실체가 없음
본질적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
목적(goal)과 전략을 혼동. (대개 이걸 미사여구로 포장)
잘못된 목표(objective)로 구성. (비현실적이거나 주변적)
그럼 왜 이런 나쁜 전략이 만연할까요.
우선 리더의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없으니 집중할 것도 없습니다. 말로만 '모든걸 다 잘하자' 해두고, 안되면 조직의 문제인거죠. 그리고 종종, 아니 매우 흔하게 템플릿에 의존합니다. 전략 세우다 치면 어디서 들은건 있어서 '비전-사명-가치 체계'를 만들고 하위전략 만들자고 합니다. 하지만 전략의 본질이 없는데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템플릿 넣고 돌리면 보기 그럴듯한 문서는 나오지만 알맹이는 없지요. 이기기 위한 지침이나 성공의 요체는 템플릿이 줄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해집니다. '하면 된다'는 영적믿음이죠.
그러면 좋은 전략, 본질이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저자의 정리가 마음에 듭니다.
1. Diagnosis
2. Guiding policy
3. Coherent action
첫 단계인 진단은 매우 진실되고 성찰적이어야 합니다. 현재의 약점과 도전을 망라해야 합니다. 보통 이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여길 스킵하거나 대충 퉁치고 가는 순간, 조직의 구성원들은 알지요.
'어차피 안하겠네. 또 하나의 문서구나.'
둘째 과정이 흔히 전략적 통찰이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나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대할 방법, 어렵지만 도전해야하고, 정해지면 실행가능한 목표와 목적을 정해둡니다.
마지막 과정은 일관된 실행이지요. 흔히 외부 전략가를 동원하면 1을 대충하고 2를 그럴듯하게 적고 갑니다. 따라서 실행에 대한 아무 보장이 없지요. 하지만 진짜 전략의 가치는 일관된 실행에서 나옵니다. 사실 통찰 면에서 예리함이 덜해도 일관된 조직적 실행으로도 잘된 집이 많습니다. 반대로 실행은 안 받쳐주지만 뛰어난 기회포착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지속가능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지요.
Inuit Points ★★★★★
재미났습니다. 특히 나쁜 전략을 앞머리에 세워, 저는 처음부터 빨려들며 읽었습니다. 실제 해 본사람만이 짚을 수 있어 깊이 공감되는 지점입니다.
나쁜 전략은 좋은 전략의 부재가 아니다.
나쁜 전략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나쁜 전략의 존재가 되려 좋은 전략을 축출한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아마 이렇게 요약이 될겁니다. 저도 산발적이고 모호한 나쁜 전략을 좋은 전략과 두고 빛과 그림자처럼 대조해서 생각해보니 더 명료해진 점이 많습니다. '전략의 거장' 운운하는 한글 부제는 매우 호들갑스럽지만 내용이 알차니 넘어갑니다. 별 다섯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