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버전으로 코로나 감염이 대폭발 했습니다. 2년간 철옹성 같던 수많은 회사들이 속수무책으로 털렸습니다. 제 주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가 나왔고, 확진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냥 걸려버리면 마음이 편한데, 본능처럼 도망치고 숨게 됩니다. 외롭고 고달팠습니다. 그래서 윌스미스 주연의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모두가 좀비가 되는 세상에선 내가 비정상이다.
이런 내용의 대사가 잊혀지지 않아 이 영화가 떠올랐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이야기를 페북에 나누다 보니, 친한 동생이, 자긴 원작소설이 최애라고 합니다. 전에도 원작 괜찮단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궁금해 읽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숨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도 많으니 말입니다.
Richard Matheson, 1954
진짜 그렇네요. 책이 더 재미납니다. 모두가 좀비가 된 후 고독하고 우울할 내용을, 호흡이 느린 긴 글로 읽는게 즐거울까 싶었는데, 생각과 달랐습니다.
소설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뭐가 정상(normal)인가? 다수(majority)의 생각이 정상이라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은가?
그리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각자의 세계관이 있을 따름이다.
소설의 설정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내용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제가 기억하던 내용과 너무 달라 독서 후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황당할 정도로 다르더군요. 대중을 위해 내용을 쉽도록 바꾼 것도 아닙니다. 왜 이리 이상하게 비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극장판 같은 경우 주제를 완전 뒤집어 놓았습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이, 도시괴담 또는 설화적 전설인데, 극장판은 영웅설화의 '전설'로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물론 영화는 그 자체로 재미납니다만, 원작의 촘촘하고 섬세하게 의도적인 전개를 팽개친게 아쉽습니다.
원작 이야기가 나온김에 저자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리처드 매드슨은 탁월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스티븐 킹이 이양반 책을 읽고 작가가 될 결심을 했다고 알려졌지요.
이 소설은 1954년 작이고, 좀비 세계관의 시조새 격입니다. 중세 드라큘라 설화를 들추어 내,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면서 현대 좀비물의 특징을 정립했습니다. 왜 좀비가 생기는지 감염의 기제, 그들의 약점 등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현대 좀비물이 그 덕을 많이 보고 있고요.
또 매드슨은 그 유명한 '환상특급'의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 기이하고 비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죠. 한글판 서적의 후반부는 그의 단편소설이 모아져 있고 이것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Inuit Points ★★★☆☆
세계관의 발상, 스토리의 전개, 숨겨둔 메시지 등에서 매우 재미난 작품입니다. 70년전 작품이란걸 감안하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나는 전설..' 이외의 소품들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요즘 초단편과 비교하는 맛이 있습니다. 자극은 순한 맛이지만, 장식은 사뭇 공을 들였습니다. 현대 초단편이 아이팟이라면, 매드슨의 짧은 글들은 나무로 만든 축음기 같습니다. 별 셋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