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용의 부피로 죽은 손자를 살려낸건가
Strategy without tactics is the slowest route to victory.
Tactics without strategy is the noise before defeat. -Sun Tzu
전술 없는 전략은 아득한 승리이고
전략 없는 전술은 소란스러운 패배다. -손자
경영 관련한 서적을 읽다가, 꽤나 마음에 드는 구절을 봐서 적어뒀습니다. 전략과 전술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전략을 업무로 한 이후에도 손자병법을 적어도 2회독은 한 거 같은데, 내가 저 구절을 왜 지금 처음 볼까?"
다시 손자병법을 꺼내어 전 챕터를 훑어 내려도 저런 구절은 없습니다. 분명 영어 검색을 하면 저 문장 그대로 꽤 많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용어적 차이였습니다. 전략과 전술이라는 개념 자체야 고대 이래 유구합니다만, 지금의 용어로 정립된 것은 현대전의 교리와 맞닿아 있으니 밀입니다. 그러고보니 손자는 전술이란 말을 어떻게 부를지도 궁금했습니다.
다시 손자병법에서 해당 구절과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 봤습니다. 손자병법은 전략적 수준의 시각이 강합니다. 전쟁 이전에 준비를 잘 해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걸 최상으로 봅니다. 그 관점에서 필요한 국가적 준비, 전쟁의 준비, 전투의 준비, 행군의 준비 등을 층위를 자세히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나마 전술적 수준의 언급이 많은건 허실, 행군, 지형 편이지만, 세편을 비롯해 전문에도 전술없는 전략이나 전략없는 전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몰라 시그너처 한자도 찾아봤습니다. 손자병법에는 패(敗)라는 말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딱 10 문장 나오는데 전혀 무관합니다. 패의 다른 표현인 부(負)는 세문장 나옵니다. 역시 위의 메시지와 무관합니다. 좀 빈도가 작을, '시끄러울 소(騷)'라는 글자도 단 한번 나오고,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추정컨대, 손자 스스로가 전략과 전술을 현대적 개념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전술이 전략의 하부 개념이라기 보다는, 승부에 임하는 자세라는 통합적 개념에서의 미시성으로 전술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손자는 형(形)을 tactical formation이라는 뜻으로 종종 쓰는데, 지형편은 이렇습니다.
夫地形者 兵之助也. 料敵制勝 計險액遠近 上將之道也. 知此而用戰者必勝 不知此而用戰者必敗.
부지형자 병지조야. 요적제승 계험액원근 상장지도야. 지차이용전자필승 부지차이용전자필패.
지형은 용병을 보조하는 것이다. 적의 상황을 잘 통제하여 승리를 하고 지형의 험난함과 위험,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는 것이 상장군이 해야할 일이다.이것을 잘 이용하여 전쟁을 하는 자는 필히 승리한다. 이것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전쟁을 하는 자는 필히 패배한다. (나무위키 해석)
지금까지 살펴본 바, 처음의 저 영문장은 손자병법에 직접 맞닿지는 않은것으로 판단됩니다. 영문은 어찌된 일일까요. 혹시 의역의 수준이 심했던 것일까 찾아 봤습니다. PDF로 확인 가능한 중 가장 오래된 1910 Lionel Giles의 판본이나, 가장 최근이며 중국 역자의 판본인 2003년 Chow-Hou Wee 판본에서도 저런 문장은 없습니다.
다시 구글에 저 문장을 넣고 시간 순으로 보니, 2002년 Voice & Data라는 인도 매거진에서 처음 검색이 되고, 그 이후 인도에서 국방, 경영, 노동 관련한 논문에서 인용이 되다가, 2004년 경 미국으로 넘어가 경영 관련한 다수의 책과 블로그에 인용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도 우리나라의 여러 블로그에서는 다시 저 영문을 번역하여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도 누군가 해놓은 것을 그대로 쓰는 경향이 보입니다.
결론입니다.
전략없는 전술과 전술없는 전략이라는 이야기는 저 자체로 매우 통찰력이 있는 경구임에는 분명합니다. 손자라는 권위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전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다만, 제 추정으로는 손자의 이야기는 아니고, 그럼에도 확산되는건 기계적 인용의 오류 같습니다. 처음 거짓 주석을 단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손자말씀이니 편히 가져다 쓸 수 있었겠지요. 저처럼 손자의 뉘앙스까지 탐독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