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에 의한 다수의 장악, renormalization
캐나다에 6개월 파견을 간 적 있다. 현지인 동료로부터 멀쩡한 중고차를 샀는데 우리 돈 백만원도 안 했다. 매우 오래됐고, 디젤엔진이었다. 값이 쌌던 건 수동변속기란 이유도 컸는데, 자동기어가 아닌 제품을 선뜻 인수해가는 사람이 없었단다.
요즘은 수동변속기를 보기가 매우 어렵다. 수동이 드라이빙하는 재미가 있지만 도시에서 운전하긴 불편한게 사실이다. 그러면 수동변속기가 자동보다 열위의 기술이라 사라졌을까.
수동과 자동 변속기가 혼용되던 시점에는 수동은 수동대로 가격의 우위가 있어 그냥 멸종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정규화(renormalization group) 개념을 적용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예컨대 4인가족이 새 차를 산다. 아빠, 엄마, 딸은 수동 기어 운전이 가능한데, 아들은 자동 아니면 절대 운전을 못한다. 이 집은 어떤 차를 살까? 자동변속기다. 이게 1차적 재정규화다. 같은 원리로, 렌터카든 친구집 차든 주변에 보이는 차가 다 자동이면 애써 불편하게 수동기어 조작법에 익숙할 필요가 없다. 이러다 시간 지나면 모두가 수동 운전 기술이 퇴화되고 자동은 대안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미국의 땅콩도 그러하다. 땅콩 앨러지가 의도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법률적 근심으로 대개의 상업시설은 땅콩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집에 땅콩 앨러지 환자가 하나만 있어도 그 집은 땅콩을 잘 안 먹게 된다. 결과적으로 땅콩을 먹을 수 있었던 다수마저 앨러지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진다.
과한 비약일까.
나심 탈렙의 '스킨 인 더 게임'에 이러한 일화가 수두룩하게 소개되어 있다. 코셔와 할랄 음식이 좋은 예다. 유대인과 무슬림은 '더러운 음식'을 절대 못 먹지만, 일반인은 코셔든 할랄이든 먹을 수 있다. 음식 제공자는 비용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 코셔나 할랄로 준비해두면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팔 수 있다. 피 뺀 고기 정도가 대수일까. 하지만, 중세에 이교도의 방식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이는 건 종교적 고문의 방법이었다.
이것도 중세가 아니니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볼까.
중동의 언어를 배울 생각이 없는 아람어가 소수임에도 그렇게 남았고, 배타적, 순교자적 포교를 하던 이슬람이 불과 수백년만에 세계의 메이저 종교가 되었다.
탈렙은 앞서 말한 책에서 리스크와 책임의 비대칭 관점에서 다양한 부조리를 짚는데, 한 챕터를 할애해 '소수에 의한 다수 장악'을 논한다. 두 대안의 비용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을 때, 어떤 사안에 완강한 소수는 극렬히 반대하고, 유연한 다수는 조용히 불만을 가지면 소수가 반드시 이긴다는 현상이다. 공리나 대의, 정의보단 눈앞에서 소리 높여 반대하면 압도적 다수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점이다.
탈렙 책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아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겠군. 예리한 관찰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택시업계의 완강함을 핑계로 타다의 경영진이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고 한다. 택시 대 뉴플랫폼의 양자구도로 단순하게 보진 않지만, 정치적으로 교착을 만들어낸 건 택시업계다. 만족하며 타다를 이용한 다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력히 타다를 반대한 소수의 뜻을 따라 진행된 사건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타다 생긴 이후 불친절하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의 택시를 안 탈 수 있어서 좋았던 소비자로서 꽤 어리둥절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