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이 일상이 된 시대입니다.
코로나가 왕관을 씌웠을 뿐, 이전부터 시작된 도도한 물결이지요. 세상에서 밀쳐졌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든 홀로인 시간이 많고 그만큼 외로운 시대입니다. 외로움이란게 전보다 성기게 연결된 사회, 도시화와 산업화에 수반되는 그림자 아닐까 싶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구조적 부조리가 있음을 이참에 알게 되었습니다.
Noreena Hertz, 2020
외로워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믿어지나요?
일본의 65세 범죄율이 20년간 네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경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감옥에 가면, 돌봐주고 말걸어주고 친구가 생겨 스스로 창살 안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마음의 문제 뿐 아니라 실제 몸도 아프게 합니다. 외로와서 생기는 신체적 위해가 알콜중독급, 비만의 두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국에선 2018년 외로움부 장관(minster of loneliness)을 임명하기도 했지요.
이런 외로움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얼마나 문제인지는 사실 여러 문헌에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허츠의 논점은 그 이면을 향합니다.
포퓰리즘은 외로움을 먹고 자란다.
쥐실험을 해보면, 외로우면 공격적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외로우면 자기 말을 경청해주는 사람 말을 더 잘 믿게 됩니다. 비합리적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을 포퓰리즘이 공략합니다. 일자리가 나빠지면 경제적 토대가 허물어지고 외로움에 취약해집니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 영국의 샤이어 지역을 눈치 빠른 정치인들이 공략해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뒀지요.
신자유주의는 외로움을 양산한다.
외로움은 결국 물적 토대의 변화가 야기한 현저한 변화입니다. 늘 그래왔던게 아니라 딱 40년 심화된 외로움이지요. 신자유주의는 관계중심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거래중심으로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친절함과 선의는 경쟁과 욕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저자는 시민을 소비자로 바꿨다고 표현합니다. 연대보다 개인의 소비가 부각되고, 우린 흩어지고 외로와집니다.
외로이 지내면 외로움이 고착화 된다.
저자의 주장은 외로움 그 이후를 향합니다. 혼밥을 먹고, 자발적으로 고치 속으로 들어가고, 친구와 애인을 앱에서 구매하면 당장은 감정적 비용이 적어 효용을 느끼지만, 결국 어울려 사는 법을 잊게 됩니다. 감정의 근육이 약해지니 그 다음 관계를 재구매해야 하지요. 따라서 외로움의 회복은 포용적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부활, 따뜻한 미래와 연관이 있습니다. 마지막 몇 개 사례는 판도라 상자에 남은 한가지 희망같습니다. 독일의 'Deutchland spricht'나 르완다의 Umuganda, 마크롱의 의무 시민봉사제도는 다 시사점이 풍부합니다.
Inuit Points ★★★★☆
제목은 살짝 불만입니다. '고립의 시대'라는 건조한 문장은 책이 지닌 절절한 외로움을 못 담습니다. 원제대로 '외로운 세기'가 더 낫습니다. 노리나 허츠는 처음 들어보는 저자인데, '석학'이라는 빛바랜 간판같이 흔한 타이틀을 수식어로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점과 시각이 예리하고 좋습니다. 무엇보다 매혹적인건 글을 참 잘씁니다. 전문 글쟁이처럼 유려하고 감성이 풍부함에도 메시지는 준열합니다.
책 읽으면서 세상 구석구석 외로움을 들쳐보며 괴로왔습니다. 한번에 많이 읽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다음 문장이 어디로 향할지 내내 궁금해서 꾸준히 읽었습니다. 아, 책 읽다 고치속으로 숨은 지인들이 간간히 생각 나 메시지와 마음을 전했더랬습니다. 다 반갑게,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어 외려 내가 고마웠습니다. 별 넷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