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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부인 Jan 31. 2020

우리 그리고 까미노 -  2일 차 순례자

Day2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23km

새벽 6시

고단했을 법도 한데 긴장한 탓인지 잠만보 두 명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아직은 가방 챙기는 기술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몸이 무거워서인지 침낭을 정리하고 배낭을 다시 싸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오전 7시

어제 미리 구매해 놓은 아침 식사권으로 아침을 먹으로 나선다.

아침식사는 알베르게가 아닌 근처 식당에서 하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나와야 한다.

아직은 해님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차가운 느낌의 아침이다.

이렇게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첫 아침의 시작이다.

식사 장소는 아침 식사권에 나와있다.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을 무작정 따라가면 다른 식당일 수 있으니 티켓에 나와있는 이름을 확인하고 이정표를 보고 잘 찾아가야 한다.

뭔가 아침부터 술래잡기하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식당에 잘 도착해 동그란 테이블에 다른 순례자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식사는 커피와 주스 그리고 간단한 빵과 과일이었다. 5유로라는 가격이 좀 비싸게 느껴졌다.

(이후에도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몇 번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근처 카페에서 사 먹는 편이 Better!!)


마침 같은 테이블에 바욘 터미널에서 만났던 한국인 어르신 부부가 있었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출발하셔서 오리손에서 하루를 보내고 어제 론세스바예스로 넘어오셨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를 드리고 먼저 일어섰다. 만나고 헤어짐은 늘 아쉬운 일이지만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먼저 길을 나선다.


오전 7시 35분

그렇게 우리의 까미노의 2일이 시작되었다.

2일 차 일정은 론세스바예스 약 23km 떨어진 수비리(Zubiri)라는 마을까지 걷는 것이다.

다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은 순례길 구간 안내 종이를 받지 못한 우리는 무료 앱에 나와있는 마을 간 거리를 보고 목적지를 정했다.


아침부터 비 예보가 있어서 출발 전에 우비를 챙겨 입었다. 비가 안 와도 우비가 보온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에 미리 입어도 손해가 아니다. 이틀째라고 여유도 좀 생겨서 출발 기념사진도 남겨본다.


하루 종일 걸을 뿐인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못난이 두 명이네~


아침식사 때 만난 다른 순례자들이 수비리까지 구간은 돌길로 된 내리막길이 많으니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우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그래서 어쩌면 이 길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지도 모르겠다.

조바심 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걸어보자.


걸음걸음 마주하는 길은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숲이다.

서양 동화에 요정이 그리도 단골로 등장하는지 숲들을 보니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숲길과 마주한 지 그리 오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이 마을은 '부르게떼'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로 어제 하룻밤을 지냈던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렇게 자세히 잘 아는 이유는.... 바로 여기가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혹 먹을거리를 사러 왕복 6km의 수고를 더 하는 순례자들이 있다고도 한다.)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카페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아직은 고요한 마을을 지나쳐 다시 얌전하고 고요한 오솔길을 마주한다.

차가운 공기와 풀냄새가 어우러져 난다. 싱그러우면서도 청량한 기분이 든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 마을인 에스삐날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치는데 성당 한 곳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금껏 보았던 작은 마을들의 성당들과는 달리 꽤나 현대적인 느낌이어서 꽤나 인상적이었다.

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담아왔다.


두 번째 마을을 나오며 넌지시 남편에게 물어본다.

"남편! 우리 언제 쉴 수 있어요?!"

'글쎄~'라는 말만 남긴 채 남편은 걷는다. ㅋㅋㅋㅋ

그렇다면 나도 걸어야지!

다른 순례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나누며 하늘과 풀밭 사이에 피어난 꽃들을 벗 삼아 걷고 또 걷는다.

평탄한 길들이 한 참 이어지다 작은 고개가 하나 나타났다. 가파른 고개는 아니지만 길이 좁은 탓에 숲 속을 헤처 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좁은 숲길을 탈출해 고개 정상에 다다르니 성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비석에는 '이곳에서 론세스바예스 성모에게 구원을 기도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누군가 이 길 위에서 성모님께 간절한 구원을 바랐던 것일까...?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십자가나 성모님이 이곳에 계시게 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발 딛는 걸음마다 상쾌한 공기가 코로 밀려들어온다. 탄자니아에서부터 요르단까지 달고 살았던 기관지염이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씻은 듯이 나았다. 새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이어지는 숲길을 걷는다. 숲길이 끝나갈 무렵 포장된 도로가 나오고 우리는 직감적으로 세 번째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세 번째 마을 비스까렛 초입에 다다랐다. 마을 입구에는 순례자들로 가득한 작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걸어왔으니 우리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출발할 때 잔뜩 흐렸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하늘이 마중 나온 덕에 아침내 입고 있던 우비도 시원하게 벗어버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따듯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몸이 스르르륵 녹는 기분이다.

따듯한 커피 한 잔으로 순례길의 감초 같은 이 시간을 즐겨본다.


오전 11시

얼마나 쉬었을까 몸이 완전히 풀어지기 전에 다시 배낭을 고쳐 멘다.

꿀 맛 같은 휴식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것인지....


휴식을 마치고 만난 길들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침 식사 때 조심하라고 들었던 내리막길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제 슬슬 나타나는 것 같다.

요 며칠 내린 비로 질척이는 흙과 미끄러운 돌들로 이뤄진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미끄러운 돌 탓에 속도가 줄어 내리막길에서 꽤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종종 내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 순례객들을 보며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두 발로 내려가는 것도 이리 신경이 쓰이는데 자전거로 후다다다다다닥 내려간다.


다행히도 내리막길은 너무 길지 않았다.

이 돌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법처럼 잘 포장된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에 푸드트럭까지~~

순례자들이 지쳐할 만한 구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 같다. 순례길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도장만 찍고 이 트럭을 지나치려는데 속옷이 들어있는 박스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박스 앞에는 이곳에 속옷을 두고 가면 길 위에서 인연을 만난다는 이야기와 이 트럭 앞에서 찍은 누군가의 결혼사진도 있었다. 정말 여기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한 커플이 있는 걸까?!ㅋㅋ 더 재미있는 건 속옷이 이미 가득 찼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조금 생기기도 했지만 이미 인연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이기에 사진만 남기고 수비리를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다.

목적지까지 고작 4km 정도 남았으니 조금 더 기운을 내봐야겠다.

마지막 4km의 길은 오늘 마주했던 19km의 요약본 같은 느낌이 든다.

울창한 숲길을 마주하기도 하고 잘 다져진 평지를 만나기도 하고 울퉁불퉁 내리막길도 마주하게 됐다.

다양한 길들을 마주하니 마지막 구간이 지루 할 틈 없이 지난 간 것 같다.


오후 2시

드디어 순례길 2일 차,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 지도에는 슈퍼, 알베르게, 약국 등의 시설들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우리는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 만나게 된 작은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사립 알베르게여서 요금은 하루에 10유로였고 주방은 없으나 전자레인지와 간단한 식기류는 이용할 수 있다.

배낭을 내려두고 제일 먼저 샤워를 하러 갔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따듯한 물에 씻는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루의 피로를 물로 씻어내고 남편과 동네 구경에 나섰다.

마을은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 씨에스타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조용한 마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례객들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아주 고요한 느낌이다.

다행히 알베르게 근처에 문을 연 슈퍼가 있어 간단한 요깃거리를 살 수 있었다. 3분 요리 빠에야를 먹으려던 찰나 슥삭슥삭~~ 하몽을 자르는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하몽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기에 메뉴를 변경했다. 하몽과 바게트 그리고 와인을 사서 다시금 알베르게로 향했다.

투박한 유리용기에 마시는 와인이지만 세상 어느 와인보다 향긋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

순례길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서 일까?! ㅎㅎ

와인 한잔에 하몽과 바게트를 먹으며 도란도란 하루를 추억하다 보니 이렇게 우리의 순례길 둘째 날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이제 내일이면 벌써 순례길 3일 차가 된다니 허허 신기하기만 하다.


또 내일은 어떤 길 위에 있게 될까?!

알딸딸한 기운으로 침대에서 스르륵 잠을 청한다.


내일도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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