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소도시 나 홀로 여행 계획을 말씀드리니,
이모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얘가, 얘가, 거기가 어디라고 가려고 해?!"
"요새 동남아 여행 갔다가 납치된 사건, 사고도 얼마나 잦은데. 더군다나 혼자서 간다며."
"너 거기 가려면 이모들 얼굴 더 이상 안 볼 생각하고 가!"
"있잖아, 거긴 정말 가지 마.. 부탁이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모들의 말에 엄마만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얘는 그러고도 갈 애야."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했다.
자카르타는 다녀왔지만
바탐은 소도시로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서 인도네시아어도 실제로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떠났다.
더 걱정하실까 봐
이모들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바탐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현지인 친구를 만났지만,
독감으로 현지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진짜 혼자였다.
'괜찮아. 원래 혼자 다니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조금 막막했다.
문득 이모들 말씀이 떠올랐다.
'혼자서... 위험하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독였다.
한국 출발 전, 계획을 세웠었다.
'버스 타면 인도네시아어 연습 많이 하겠지?
안내 방송도 현지어로 나오고 기사님, 승객들과 얘기를 나눌 수도 있을거고..'
기대했다.
하지만 바탐에 도착해서는 버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 버스가 어디 있지?'
나중에 그랩 기사분께 물었더니 버스는 없다고 했다.
"Nggak ada bus di sini.(여기에 버스 없어요.)"
'아, 그렇구나.'
계획이 틀어졌다. 할 수 없이 걸었다.
다행히 호텔은 중심가에 위치해서 몰과 푸드코트가 가까웠다.
첫날에는 그랩을 이용했다.
하지만 걷는 게 익숙한 뚜벅이라서 가까운 곳은 걸어 다녔다.
바탐의 거리는 한적했다.
주택가에는 낮은 2층짜리 집들과 마당이 있는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치 오래된 동네 같은 느낌이었다.
길거리에서는 가끔 고양이 몇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강아지는 없었다.
바탐에는 횡단보도가 거의 없었다.
차와 오토바이들이 쌩쌩 지나다녔다.
지나다니지 않는 타이밍에 아슬아슬하게 건넜다.
바탐은 여자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한 소도시가 아니었지만,
이때는 조금 아찔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친절했다.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대신에 그랩 기사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서툰 인도네시아어를 알아들으시곤 대화를 이어주셨다.
길을 걷다가 과일 가게를 봤다.
천장에 과일을 걸어 놓고 팔고 있었다. 신기했다.
인도네시아어 수업 시간에 본
전통 경보 도구 kentongan도 봤다.
거리에는 버스킹처럼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를 이용했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걷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버스보다 느렸지만 천천히 보였다.
바탐의 공기,
바탐의 거리,
바탐의 사람들.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나만의 속도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어디 갈까?'
'저 식당은 어떨까?'
'저 길로 가볼까?'
모두 내 선택이었다.
저녁이 되면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찍은 브이로그를 확인했다.
"Selamat pagi..."
"Saya mau pesan..."
인도네시아어로 말하는 내 모습과
내 목소리가 들렸다.
'잘하고 있네.'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이모들의 걱정과 달리
바탐은 안전했다.
혼자여도 괜찮았다.
걸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한국에 돌아와 브이로그를 완성했다.
인도네시아 대사관 ROMBA 대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운 좋게 대사관으로부터 초청받았다.
이모들께 말씀드렸다.
"사실, 인도네시아에 다녀왔어요."
"뭐?!"
이모들은 놀라셨다.
"거기서 찍은 브이로그로 대사관에 초청받았어요."
"그래도 무사히 잘 다녀왔네. 대단해!"
걱정이 안도로 바뀌었다.
혼자여도 인도네시아는 괜찮았다.
버스가 없어도 괜찮았다.
걸어도 괜찮았다.
계획과 달랐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천천히 걸으며 바탐을 느꼈다.
혼자만의 속도로 인도네시아어를 썼다.
오히려 더 편안했다.
걱정보다 도전,
그게 나를 성장시켰다.
바탐에서의 72시간은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위험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