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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Feb 17. 2021

희망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것

절망과 완결에 관한여


얼마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참고로 우리는 15 차이가 나고 서로 존대를 하지만 ‘친구.


어떤 글을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을 왜 던졌는지 모르겠다. 기자에서 작가로 전향하고 문학 장르에 도전하며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인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인지. 어떤 연유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이 질문이 던지고 싶었다.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금방 답을 내렸다.

 

"희망이 담겨있는 글을 읽는 게 좋아요. 슬픔을 다루는 글이라도 결국 그 속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고싶어요."


담백한 키워드가 있는 대답이었다.


희망.

 

인생은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을 향해 달리기 때문인 걸까. 우리는 상상의 세계에서 만큼은 항상 해피엔딩을 원한다. 매일 사람이 사망하는 내전 속에서 글을 쓰는 종군기자 조차도 더 나은 세상을 바라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현재 내가 슬럼프를 겪고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 키워드를 떠올리며 바로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희망이 있나?


솔직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없다고 대답하기는 싫고, 있다고 대답하기엔 애매하다. 현재 인생이 절망적이진 않지만 희망적이라고 말하기도 모호하다. 지금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딱히 불행하지도 않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희망이라는 말 자체에는 '미래'를 내포하기 있기에 저 질문에 더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미래라는 불확실성 속에 반짝이는 희망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마치 끝없이 어두운 미지의 우주 속에 빛나는 별들처럼.


희망은 캄캄한 밤하늘의 별빛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별빛은 이미 사라져 버린 행성일수도 있다. 그 행성의 존재 유무와 상관 없이 이 땅위에 서있는 내 눈에 포착되는 반짝임들을 보며 우린 꿈을 꾼다. 희망을 그린다.

 

이러한 반짝임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인생 속에 이 반짝임들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이 반짝임은 하늘의 별처럼 무수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갈수록 그 숫자가 줄어든다. 시간의 유한함이 재능과 노력의 부족을 만나 유성이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하나하나 남아있는 별빛의 강도는 더 밝아지고 인생길이 생기듯 별자리가 생긴다.


그러나 이 별자리는 내 상태에 따라 매우 변화무쌍하다.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에 확신이 가득하면 밝고 분명한 모양의 별자리가 될 것이고, 불안하면 희미한 밝기에 모양도 애매해진다.




내 인생의 성운 중 글쓰기는 내가 가장 아끼는 별자리다.


앞서 말했듯 나는 기자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문학에 처음 도전했다. 장르는 웹소설. 2020년 6월, 시작은 단순했다.


난임 치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친구가 웹소설에 도전해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치료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그랬던 걸까, 나는 빠르게 몰입했다. 평소 웹소설을 즐겨보는 독자는 아니지만 항상 해피 엔딩을 노래하는 이 경쾌한 장르는 힘든 시간을 겪는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다.

 

설정과 구상을 후다닥 마치고 연재를 시작했다. 급하게 집필을 시작한것 치고 초반 성적은 나름 괜찮게 나왔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면서 독자 유입이 확연히 줄더니 완결을 낼 무렵 성적은 시들했다.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이 장르는 진입장벽은 낮지만 버티기에는 어려운 판이었다.


내가 문학 장르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까. 마무리 성적을 보며 풀이 잔뜩 죽었다. 현재는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구상 단계에서부터 막막하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인가'라는 절망감에 빠져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포기하기 싫은 이유가 있다.


우선 마지막을 쓴다는 것에 희열을 알아버렸다. 미완결의 세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나 에세이같은 논픽션 장르에는 완결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의 경우에는 나만의 우주를 창조해야하고 그 끝도 그려야한다.


내가 만든 세계를 내 손으로 끝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직 하고 싶은 뒷 이야기들도 많았고,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들도 많았지만 올해 차기작 준비를 위해서 완결을 내야만 했다. 섭섭함과 아쉬움 속에서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 되었다.


슬픔 속에서 가벼운 희망을 노래하기. 이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부분에선 최적화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웹소설이라는 장치는 말 그대로 별빛을 담당하는 것 같다. 내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으니까. 소득 없는 행위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까. 내가 쓴 소설을 완결까지 다 읽은 독자들이 잠시라도 이런 좋은 기분을 느꼈다면 작가 인생 성공이리라.


빛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햇빛처럼 우리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빛, 등불이나 촛불처럼 내가 이용할수 있는 빛, 밤하늘의 별빛처럼 그다지 쓸모는 없지만 멀리서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빛.


희망은 별빛같은게 아닐까.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의 반짝임.


올해도 행복한 완결을 꿈꾸며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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