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딩크부부 이야기(4)
이 글을 발행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이유
아이를 낳고 싶었던 이유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도저히 첫 문장을 고르질 못하겠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놓고, 이리저리 도망만 친다.
'나는 왜 엄마가 되고 싶은가.'
'나는 왜 아이가 갖고 싶은가'
글쎄. 그냥 본능일까.
나를 닮은 2세를 보고 싶다는. 그런.
그냥 그 열망이 크다.
이런 나를 두고 독일의 철학자는 이기적이라 말하겠지.
태어나는 아기는 무슨 죄냐고.
예전에 썼던 일기장에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를레르의 시의 한 구절 중.
내 뱃속에 속죗거리를 잉태시킨
그 덧없는 쾌락의 밤이 저주스럽구나!
고작 내 한심스런 남편의 미움거리가 되고자
수많은 여자 중에 내가 선택되었기에,
이 오그라든 괴물을 연애편지처럼
타오르는 불꽃 속에 던지지도 못하나니.
그러나 이 시의 제목은 '축복'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단지 내 유전자를 이어간다는 의미 이상이다. 그 아이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 살아갈 환경,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도 여전히 나는 그 존재를 만나고 싶다.
그러나 가능할까.
나는 이제 비자발적 딩크의 길에 들어섰다.
이제 이 길에 들어서고 몇 발자국을 걸어왔고 이제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앞으로도 계속 지난 길을 돌아볼 테지.
딩크부부의 길.
그 끝에서 나는 울고 있을까.
과연 그 길의 끝에서 내가 웃을 수 있을까.
40대가 코앞이다.
이번 달 우리 부부는 결혼 11주년을 맞는다.
다낭성난소 증후군.
척추측만증.
약한 갑상선.
코로나 3번 걸린 면역력 낮은 몸.
나에게 찍힌 낙인.
자신이 없다.
이제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
엄마가 되고 싶은 이유만 마음속에 품은 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