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딩크부부 이야기 (5)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상상해?
그 친구는 키득되면서 대답했다.
"매일 하는데"
평소 가장 부러워하던 친구였다.
가볍게 웃으며 던진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주변 친구들이 시험관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 엄마가 된 친구들도 있고, 이제 막 시험관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다. 동서는 작년 둘째를 낳았다.
사실 나도 마음 한켠 작은 자리가 하나있다. 언젠가 시험관을 하고 싶다는 그런. 이미 인공수정을 3번이나 실패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제자리다.
이제 사실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임신하고 싶지 않다. 출산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엄마가 되고 싶다. 나를 닮은 아이가 보고 싶다.
아이를 낳으면 불행이 찾아올 것 같다.
아이가 없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이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두 마음이 충돌한 것도 어언 3년이 넘었다.
이제 마흔이 코앞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상상해?
"가끔 하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애부터 낳을래."
이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마음속 대답.
시간은 잔인하게 앞으로만 간다.
미래의 내가 후회할 것은 너무나 뻔하게 그려진다.
'아기와 나'가 과거의 나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엄마를 잃은 형제의 담백한 일상 이야기. 내 꿈은 언제나 엄마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현실에 마모된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만화 속 세상에서 깨어났다.
내 아이들은 진이와 신이같은 형제가 아닐 것이고, 내 남편은 '아기와 나'의 아빠 같은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림같이 그려진 가정을 갖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젠 안다.
어, 근데.
아니, 사실 거짓말이다. 사실을 말한다면 '정말 불가능할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나만의 완벽한 판타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 판타지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기에 아직도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이다.
판타지. 환상. 꿈.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상하지.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한데. 감사할 것 투성이인데.
나만을 사랑해 주는 남편, 안정적인 직장, 너무 편안한 우리 집. 아이가 없기에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시간도 자유롭다.
근데 이 완벽한 환경 속에서 나는 왜.
나는 어딘가 잘못된 인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후회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히 후회할 테지. 내 선택들을 원망하며.
그래서 아이 낳는 것을 선택 못하는지도. 아이를 낳고 내 건강이 망가지고, 인생이 망가진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기운다. 아이가 없는 인생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이 우울감과 상실감을 평생 안고 살며. 아이가 있는 주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러나 이런 내면의 양가감정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극단적인 모순덩어리 감정 충돌도 어느 날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선택 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 올 테니.
나는 어쩌면 좋을까.
나를 어쩌면 좋을까.
그럼에도 일종의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문장을 마음 속에서 조용히 떠올리면서 눈을 감고 한숨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