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딩크부부 이야기 (6)
가끔 생각한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둘만의 삶. 조용하고, 자유로운. 아이가 없는 삶.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예고없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그런 날.
날 닮은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말랑한 볼을 만져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누군가 내 어릴 때 사진을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유전자가 아깝다. 이렇게 귀여운데." 나와 자매 같은 사이라, 제 눈에 안경으로 귀엽게 보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 사진을 보면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제법 귀여웠던 것 같다고.
나에겐 한 살 차이 언니도 있는데 우리는 친자매처럼 가깝다. 어린 시절 우리는 같이 살기도 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언니의 둘째는 이미 초등학생이다.
누구는 가졌고, 누구는 갖지 못했고.
이 간극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온전히 이해되기 어렵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면서도, 가끔은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언니는 아이와 함께 웃고, 울고, 매일을 분주하게 보낸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는 이제 저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대학 동기들을 보면, 절반은 아이가 있고 절반은 없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그 경계가 더 뚜렷하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있는 쪽을 조금 더 부러워한다. 아이가 있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지 말하는 친구들의 푸념조차 다정한 풍경처럼 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역시 아이를 아직도 원하는 게 확실하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하지 못한다.
결혼 11년 차. 이제 마흔이 코앞인데.
척추층만증, 다낭성난소증후군. 역류성 식도염.
"나는 평소 체력도 안 좋으니까. 건강 때문에 포기하는 거야. 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아이를 안 낳을래."
이런 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나 저 정도의 질환은 갖고 있으니까.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건강이 안 좋아서’라는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명분이었다는 걸.
엄마가 되고 싶다.
이제 이 마음을 꺼내는 것조차 겁이 난다.
아, 지금이라도 시험관이라도 해야 하나. 어쩌지. 우리는 확률도 높은 편이라는데, 왜 이렇게 망설여질까.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나는 용기가 없는 걸까, 겁이 많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엄마라는 책임이 싫은 인간일까.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주변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다.
28살, 결혼하던 날에는 그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한 여자였을 뿐이다. 아이를 네 명쯤은 낳고 싶다는 그런 꿈.
다복한 집.
하루 종일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복작복작 정신없는 집.
이제 그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는 둘만 사는 조용한 이 집이 나에게 익숙하다.
3년 전 우울증에 걸렸을 때 나는 이 조용함이 숨막히는 적막함 같았다. 독약 같았다. 이건 내가 꿈꾸던 게 아닌데. 산산이 부서진 꿈은 마치 유리조각처럼 나를 찔렀다.
이제 겨우 이 부서진 꿈의 유리조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집안을 감도는 적막함이 조용함으로 바뀌고 평화로움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시험관을 정말 한번 해봐야 하는 건가? 차라리 가능성이 희박했으면 마음 편히 딩크로 살겠다고 쉽게 결정했을 텐데. 선택지가 주어지니 더욱 미칠 것 같다.
마흔 살 코앞.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오늘 나는 또 묻는다. 우리 둘만의 인생은...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