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비자발적 아홉수

결혼과 함께 시작된 나의 해체

by 타자기

행복해야 할 신혼. 나에겐 향수병이 찾아왔고, 갑작스런 환경에 몸도 더 아파졌다. 생리는 더더욱 희발성으로 변했다.

척추측만증과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족쇄에 묶인 나는 아홉수를 온몸으로 지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두 글자—‘임신’만이 맴돌았다.


나름 행복하게 지냈던 그 해의 봄과 여름. 그러나 가을이 오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결국, 겨울이 왔다. 이번 겨울이 지나기 전 임신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노력했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뭐, 아직 괜찮았다. 29살 밖에 안 됐으니까...라고, 겉으로는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나는 30살에 무조건 임신 중이어야만 했다. 그게 내 진짜 인생 계획이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나는 위태로웠다. "괜찮을 거야, 아직 스물아홉이잖아." 억지로 스스로를 달랬다. 매일 기도했고, 모든 상황에 감사하려고 애썼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남편은 옆에서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를 나무랐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내 건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아니다 보니 금방 잊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내 병을 잊고 산다. 환자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으니까. 그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갔지만,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것을 후회한다.


남편에게 내 건강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냈어야 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는 늘 가볍게만 말했고, 단 한 번도 깊이 털어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약점을 들키는 기분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 모든 약점을, 가장 먼저 남편에게 털어놓았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남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남편의 잘못이라기보다 내가 나를 숨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건강 얘기를 꺼내는 걸 두려워했다. 그 말을 진지하게 하는 순간, 내가 ‘정상적인 아내’가 아니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어쨌든 나의 이 절박함은, 우리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은 서서히 금이 되었고, 그 금은 언젠가 벽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벽은 소리 없이 자라났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마음까지는 닿지 않았다.


나는 혼자 달력을 붙잡고 날을 세었고, 남편은 그저 평소처럼 웃으며 하루를 살았다. 그 벽 너머로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아니 말을 꺼내려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가끔씩 화장실에 임신 테스트기를 일부러 올려놓았다. 한 줄짜리 플라스틱 용기를 보며, 남편은 잠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때뿐이었다. 성정이 단순하고 긍정적인 남편은 그 뒤에서 내가 흘리던 눈물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참고 참다 남편 앞에서 감정이 터지던 순간들은 항상 화가 찾아왔다. 슬픔보다는 화를 더 많이 보여줬던 것 같다. 남편에게 눈물을 보여주면 그가 너무 힘들어할 것만 같았다. 화를 내는 게 차라리 속이 편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마치 그가 무너질 것 같았다.

홀로 썼던 수많은 슬픈 일기장. 남편에게 하지 못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


그렇게 나는 조금씩, 혼자가 되어갔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예쁜 카페에 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카페 안에서 일기장을 썼다. 남편은 핸드폰만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침대 위엔 웃음 대신 한숨이 쌓였다. 달력에 표시한 날짜들은 점점 더 진하게, 그리고 무겁게 번져갔다. 그 안에는 남편이 모르는 나의 절박함과, 그 절박함을 감춘 나의 죄책감이 함께 있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남편이 아니라 임신이라는 단어와만 결혼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혼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전 01화여자나이 28살, 남자나이 29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