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하고 직관적인 가이드를 만들려면
웹에이전시에서 1.5년간 일하며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적어나가려 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 기획자들,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저를 위해 글을 남깁니다.
입사 후 슬슬 업무 인수인계가 마무리되었을 무렵, 우리 서비스의 주요 피쳐인 글 작성 기능을 설명하는 가이드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무를 받았다. 스스로 주도해서 진행해야 하는 첫번째 업무였다.
내가 속해있던 서비스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커뮤니티 플랫폼이었다. 우리 서비스는 다소 요상한 구조의 서비스였는데, 글쓰기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 별도의 회원가입을 한번 더 거쳐야 하는 데다가 가입 후 글 작성 페이지로 이동하는 과정마저도 복잡했다. 때문에 글쓰는 방법을 묻는 문의사항도 적잖이 들어왔고, 내부에서도 복잡한 글쓰기 기능이 서비스 활성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편리한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빠르게 개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전까지 사용자들의 원활한 이용을 돕기 위해 임시방편으로나마 글쓰기 가이드 콘텐츠가 필요했다.
우선 콘텐츠를 어떻게 제작해야 한다는 별도의 매뉴얼이 없었기에, 기존에 우리 서비스의 이벤트 운영담당자님이 이벤트 관련 가이드를 작성하던 방식을 모방하기로 했다. 주된 설명은 텍스트로 작성하고, 설명을 돕기 위한 이미지를 덧붙인, 아티클 형식의 콘텐츠를 상상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피그마로 이미지를 제작한 후 텍스트를 덧붙여 1차 시안을 완성한 뒤, 내게 작업을 맡긴 실장님에게 공유했다.
실장님의 피드백은 이러했다.
이미지 디자인이 필요할 것 같다.
텍스트가 너무 많다. 직관적 이해가 가능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사용자들이 실제로 불편을 느낄만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미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내가 제작한 콘텐츠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문장도 제법 잘 다듬어져 있었고, 이미지도 나름대로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잘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 수 있을지, 좋은 레퍼런스를 찾고 싶었지만 무엇을 참고해야 좋을지도 아리송했다.
일단 무작정 구글에 ‘가이드’, '매뉴얼' 과 같은 키워드들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기획자 내지는 마케터들의 블로그를 만나볼 수 있었고, 나보다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의 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카카오톡의 기능 중 하나인 ‘카톡설명서’에 더불어 다양한 웹/앱서비스의 온보딩 화면을 참고하며 좀 더 트랜디하고 직관적인 형식으로 제작 방향을 변경하기도 했다.
여러 인사이트를 참고해 판단해봤을 때, 내 제작물과 작업방식엔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가이드 콘텐츠 또한 서비스의 일부로서 BI 통일성을 고려해야 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고 있었다. 글을 쓰는 과정의 UX를 꼼꼼히 검토해 보아야 했다.
아티클 형식이 정말 최적의 매체인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담기에 걸맞은지,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읽는데 과연 많은 시간을 쓸 것인지를 고려야 했다.
무작정 디자인 작업을 요청하기보다, 어디에 쓰일 이미지인지, 왜 필요한지, 무엇을 위해 제작되어야 하는지를 협업자에게 잘 전달해야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SB라 부를 수 있을 만하게, 제작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대한 상세 설명을 덧붙인 문서를 만들었다. 나와 협업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물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중인 아티클을 함께 보여주며 작업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에 상시 노출되는 콘텐츠이므로 디자인에 신경써 달라는 부탁을 정중히 덧붙였다.
몇 시간 뒤 디자이너가 새로운 디자인 작업물을 보내왔다. 내가 봐도 이전의 작업물과는 달리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되었다. 전달받은 이미지로 교체하며 콘텐츠를 다시 매끄럽게 다듬었다. 이미지를 적절히 목차에 맞게 배치하고, 텍스트는 간결한 설명만 남긴 채 최소화하여 보는 이가 이미지 위주로 내용을 이해해 나가게끔 구성을 손보았다. 추가로, 직속 사수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더 친절하게 UX Writing을 수정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정직하게 '저장하기 & 발행하기'라고 표현했다면 이를 '글 작성을 끝내셨나요?'라는 부드러운 문장으로 수정하는 식이었다. 물론 중요한 설명은 직관적인 표현을 유지했다.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한 콘텐츠를 정식으로 오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원들의 피드백이 댓글로 달리기 시작했다. 친절한 설명에 감사를 표하는 댓글들이 몇 있었다. 대단한 기능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정말 간단한 가이드일 뿐이었지만, 내가 만든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서비스의 기능을 소개하거나 사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가 다양한 방법으로 가이드 콘텐츠를 제작한다. 겉보기에는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방대한 기능의 핵심만 추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설명을 세세하게 작성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콘텐츠를 읽기 귀찮아진 사용자가 이탈해버리거나,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비스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콘텐츠는 최대한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게끔 제작해야 한다. 내가 설명해야 하는 기능, 서비스를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정말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글에서는 간략하게 추려내었지만, 가이드 콘텐츠를 제작하며 두 번이나 피드백을 받고 디자인도 한번 새로 갈아엎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내 콘텐츠를 보완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현업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 읽었다. 그중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파악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글은 우아한 형제들의 마케터 김지현 님의 글이었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디에 쓰일 것인지, 누구를 위해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글을 읽으며 고민해볼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cardnews/36
https://brunch.co.kr/@cardnews/17
사실 가이드 콘텐츠 작업을 끝마친 지 1년도 더된 지금, 반복적인 업무에 익숙해져서인지 솔직히 입사 직후 시절만큼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배워야 할 것 투성이이던 그때 지금보다 더 일을 잘해내기 위해 골몰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작업의 완성도를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수정을 거듭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세워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