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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러의 계절, ’봄’ 오고 있다

146. 맨발러 노트

by 조연섭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온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찬 바람에 움츠렸던 나무들이 서서히 연둣빛 잎을 틔우기 시작하는 이 순간을, 우리는 ‘계절의 순환’이라 부른다. 그러나 맨발로 자연을 걷는 이들에게 봄은 기다림과 해방, 그리고 생명의 약동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겨울 동안 맨발러들은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차가운 땅 위를 걷기에는 날씨가 매서웠고, 얼음장 같은 바람이 발끝을 얼어붙게 했다. 혹한 속에서도 짧은 거리라도 걸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기다림이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다시 대지를 덮고, 발바닥이 흙과 모래, 잔디, 그리고 부드러운 이끼의 촉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맨발러에게 봄의 시작은 달력의 날짜로 오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어느 날 아침, 맨발로 땅을 딛는 순간 찾아오는 미묘한 감각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차갑고 딱딱했던 흙이 푹신해지고, 공기 중에도 생기 넘치는 온기가 감돈다. 햇살은 날카롭지 않고, 흙 내음 속에서는 새싹이 돋아나는 싱그러운 기운이 감지된다.

맨발러들은 누구보다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발바닥이 온몸보다 예민한 감각기관이 되기에, 봄이 오는 속도를 손보다, 얼굴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자연과의 접점을 유지해 온 이들은 아스팔트 위가 아닌, 바다의 모래밭과 숲 속의 맨땅 위에서 봄을 맞는다.


겨울 동안 맨발러들의 발바닥은 거칠어지고 단단해졌다.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작은 고통을 감수한 대가다. 이제 봄이 오면, 그 단단함이 부드러움으로 바뀌는 시간이 찾아온다. 얼어붙은 대지 대신 따뜻한 모래 위를, 차가운 콘크리트 대신 푸른 잔디밭을 걸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의 맨발 걷기는 겨울 동안 몸속 깊이 쌓였던 무기력함을 털어내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의식과도 같다. 대자연에 대한 경배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치유의 선물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순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맨발러들의 봄맞이 선언

이제 맨발러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해변으로, 숲 속으로, 공원의 흙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봄의 촉감을 온전히 느끼며, 몸과 마음을 자연 속으로 내던진다. 더 이상 두꺼운 양말과 신발이 필요 없는 시간, 대지와 직접 연결되는 감각의 자유로움이 되살아난다.


봄을 기다린 이들에게 봄은 자유의 회복이며, 몸과 마음을 다시 깨어나게 하는 시작이다. 맨발러들은 오늘도 묻는다.


“이제 당신도 신발을 벗고, 대지의 숨결을 느껴보겠는가?”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봄, 그 기다림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계절이다.


맨발러의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이제 우리, 함께 걷자.

15일 새벽 어달해변,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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