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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May 22. 2023

바랄 망望 상서로울 상祥, 망상해수욕장

21. 브런치스토리 매거진 동쪽여행


동해안의 낭만, 망상해수욕장

동해 망상해수욕장은 동해바다를 마주하는 동해고속도로와 철도, 국도가 함께 접한 가장 이상적인 해수욕장이다. 물은 한류와 난류의 합류 지점으로 따뜻하고 맑으며 백사장은 길이와 넓이가 국내 최대일뿐 아니라, 가장 깨끗한 모래로 이름 나 있다. 또한, 해변 수심이 깊지 않고, 해수욕장 주위는 캠핑장 등 각종시설로 풍치를 이루고 있다. 근방은 펜션, 민박 시설도 많다. 특히 동해문화원이 공모사업으로 조성, 감성관광지로 유명한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항과 오징어잡이 배 도 있다. 고깃배와 언덕 위의 집, 골목의 가로등에서 밝혀주는 묵호의 야경은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묵호에서 만 볼 수 있는 명품 야경이다.


최근 동해망상해수욕장 일원은 일출 상징 시계탑, 포토존, 각종 상징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무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정비를 마치고 올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동해안 산불로 전소된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정림건축 디자인대표 출신(현, 고문)의 이형재 교수가 감각적인 설계로 새롭게 선보여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캠핑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강원 동해 <망상> 지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을 의미하는 망상妄想이 아닌 정확한 동해 망상의 표현은 바랄 망望 상서로울 상祥으로 송강 정철은 <망상>이란 시에서 ‘상서로움을 바라다’는 뜻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하면 망상은 평소 간절하게 바라던 상서로운 <꿈을 이루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망상으로, 바다여행!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난다. 꿈을 이룬다.
그곳엔 꿈과 동해가 있다.
망상의 추억거리로 새롭게 등장한 시계탑
조선중기의 문신이사 시인인 송강 정철은 망상을 배경으로 <상서로움을 바라다> 제목의 <칠언절구>의 글을 남겼다. 망상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망상 <상서로움을 바라다>
바랄 망 望 상서로울 상 祥


조선 중기 문신(文臣) 시인 정철(鄭澈) 지음


咫尺仙娥一望祥(지척선아일망상) 눈앞에 뜬 달 한번 상서롭게 바라보았으나
碧雲迷海信茫茫(벽운미해신망망) 자욱한 구름바다에 가려 소식이 망망하네.
如今悔踏眞珠路(여금회답진주로) 이번에 진주길 밟은 일 후회하노니
錯使行人也斷腸(착사행인야단장) 나그네 마음은 창자 끊는 아픔일세.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제목은 '상서로움을 바라다'라는 뜻이다. 송강(松江)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 직책을 수행하면서 삼척에서 소복(小福)이라는 관기(官妓)와 정을 나누었다. 나중에 정철이 다시 삼척을 찾아 소복을 만나고 싶어 수소문하였으나 이미 그녀는 강릉(江陵) 유생의 소실이 되어 있었는데,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강릉의 읍지(邑誌)인 <임영지(臨瀛紙)>에도 실려 있다. 선아(仙娥)는 선녀 또는 달을 가리키며, 진주(眞珠)는 강원도 삼척(三陟)의 옛 이름이다. 강원도 망상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망상해수욕장, 사진_동해시 DB
언론에서도 주목한 직장인밴드 동해콘서트
망상해수욕장이 들어서던 시절부터 망상에 살았던 변상규(남, 78)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나는 망상이 개발되기 전부터 입구에 작은 상점을 운영했어요. 그 이전은 서울에서 송정에 있는 <북평역> 앞으로 이사를 와 식당을 운영했는데,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역전 주변경기가 하루 다르게 위축되던 시기 었어요. 마침 망상해수욕장을 개발한다기에 찾아왔지요. 그때(1977년)만 해도 변변한 상가가 없었어요. 정양물산에서 합판으로 방갈로를 만들어 관리했고, 상가는 철재를 용접해 여름철에만 천막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했어요. 나는 장래를 내다보고 철재 상가 하나를 분양받았죠.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해 여름은 장마가 너무 길었어요. 해가 난 날은 달랑 이틀뿐이었어요. 횟집(오동동횟집)을 했는데, 그해는 나뿐 아니라 상가 사람들 모두 완전히 죽을 쒔어요. 다들 투자비도 건지지 못했는데, 정작 돈 번 사람은 묵호중앙시장 상인들이었어요. 매일 비가 오니 낮에 으스스하고, 밤에는 추우니까 따뜻한 담요를 사러 갔지요. <인디언담요>가 동날 정도로 팔렸다 해요. 관광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2박 3일이나 3박 4일 계약하고 오기 때문에 날씨 나쁘다고 혼자 돌아갈 수 없었어요. 매일 비가 오니, 먹을 게 많은 중앙시장에서 술 마시고 노느라 돈을 다 써버려, 나중에는 시계며 카메라, 야외전축 등을 팔아 외상값을 갚았지요.


같이 철재 상가를 시작한 사람들 중에 대부분 그만두었지만 나는 꾸준히 했어요. 그 이유는 시내에서 장사를 하면 365일 긴장을 하지만 <해수욕장은 여름 한철만 잘하면 된다> 하는 기대가 있잖아요. 동해시 개청(1980.4.1) 후 <정양물산>에서 상가 건물을 지었어요. 나는 선뜻 한 칸을 분양 신청했는데, 몇 년간 여러 칸이 비어 있었어요. 다행히 시에서 합판 방갈로가 있던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소위 마이카 <my car> 족들이 늘어나면서 매년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해수욕장 입구도 처음은 사람 따로 차 따로 오게끔 길을 새로 냈어요. 고속도로 개통과 경기 호황, 자가용 증가 등으로 엄청난 인파가 망상으로 몰려오자, 관리인들이 <만차>가 되었다며 차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했어요."

망상해수욕장, 사진_조연섭
동해문화원 주관, 대한민국직장인밴드 동해콘서트 장면

이렇게 <망상해수욕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정양물산>이나 <중원개발> 같은 회사 덕도 있지만 1980년, 묵호읍과 북평읍이 합쳐 탄생한 <동해시>가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각종 시설물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20리가 넘는 명사십리 백사장, 울창한 소나무 숲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에다 경제성장과 함께 바캉스 물결이 맞물려 오늘날의 명품 망상해수욕장이 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_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이야기가 있는 망상,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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