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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195. 노트_ 동쪽여행

by 조연섭

5일 오전, 지역재단 인권경영위원회 위원 회의에 참석했다. 인권경영 관련 장황스런 대화가 오고 갈 때 재단 대표가 지역 YWCA 모 회장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왜 여성분들은 나이가 들면 남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하는가?” 질문을 받은 YWCA 회장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때, 대부분 존경하는 부분에 끌려 사랑을 결정한다. 돌아보면 여자가 남편을 탓했지만, 남자는 정작 본인을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존경했던 따뜻한 마음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존경이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족 현상‘이다. “라고 했다.


짧지만 강렬한 답변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남는 감정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곱씹게 만드는 말이었다.

사랑의 출발점은 존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적 동요로만 이해하지만, 사실 성숙한 사랑의 출발점에는 ‘존경’이 자리한다. 겉으로는 외모나 성격, 조건 등에 끌려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상대에게 자신이 닮고 싶거나 배울 점을 찾는다. 존경할 만한 요소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관계로 발전한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 사랑은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신뢰와 존경 위에서 성장한다. 남자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며, 성숙한 태도로 삶을 살아갈 때, 곁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존경이 유지되지 않을 때, 사랑도 변한다. 남자가 자기 성장을 멈추고, 책임감보다는 권리만을 주장할 때, 처음의 존경심은 점차 옅어지고, 결국 사라진다.


존경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부부 사이에서 존경이 사라진 다음에는 침묵이 길어지고, 대화는 변명이 되며, 함께하는 시간은 무게가 된다. 많은 부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서로에게 존경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대단해 보였고, 닮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다시 존경할 수 있도록 서로 변화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애정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


그 ‘다른 감정’ 중 하나가 바로 모성애다.

어떤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남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잃어버린 감정을 아들과의 관계에서 찾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기대했던 존경과 보호의 감정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때,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아들에게 감정의 중심을 옮긴다. 아들은 아직 성장 중이고,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키우고 보살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개인감정 변화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 부부 관계에서의 기대치, 모성과 부성의 차이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결국, 존경이 사라진 관계에서 여성이 감정을 옮길 곳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부 관계에서 존경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도 서서히 그 빛을 잃는다. 하지만 존경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그것은 한쪽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가치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태도: 존경은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할 때 유지된다. 배우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이 존경받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상대방 탓 보다 스스로 돌아보기: 사랑이 식었다고 느낄 때,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계에서 나의 태도는 어땠는가? 상대방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는가?

소통과 이해: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 사이의 대화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화 없는 관계는 감정이 사라지는 지름길이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가는 감정이다. 존경이 있는 곳에서 사랑은 자라고, 존경이 사라진 곳에서 사랑은 서서히 잊힌다.


YWCA 회장의 말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남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면서도 여전히 존경할 수 있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권을 논하는 자리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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