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Ai_note
“중국 춘제 축제장에서 사람과 유사한 체격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이 갑작스레 관람객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사고가 생길 뻔했다.” (2025.2.28 매일경제 기사)
갑자기 난폭해지더니 사람을 공격한 ‘중국 AI 로봇’의 사례와 TV뉴스로 소개된 장면 세 컷을 시사점 위주로 분석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제러미 해리스 글래드스톤 AI CEO가 말하는 경고를 담고 있다. 그는 기술이 인간의 정서적 관계를 해체할 수 있으며, 일부 사용자는 AI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위 이미지는 AI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의 모습이다. 인간의 감정을 모사하는 이 로봇은 “AI가 너무 강력해져서 인간도 모르게 인간을 조종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아래 세 번째 이미지엔 시민들의 반응이 담겼다.
“로봇 안에 건달 들어있는 거 아니냐”, “우려하던 Ai의 미래 모습이 딱 이거다”라며 공포와 불안을 드러낸다.
이 장면들은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모인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중력장’ 안에 들어와 있으며, 그 중력은 단순한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력장]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 속에서 다른 질량체에 미치는 중력의 작용을 나타내는 물리적인 장(field)을 의미한다.
AI는 이제 계산기나 도구가 아니다. 감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심지어는 사람보다 더 일관된 ‘공감’의 언어를 구현한다. 사용자의 감정 곡선을 파악해 콘텐츠를 추천하고, 외로움을 채워주는 친구처럼 작동하며, 연애 대상조차 대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의 우연성과 불완전성을 견딜 필요가 없어졌고, 점점 더 알고리즘에 안기는 삶으로 기울고 있다. 감정은 상호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피어나는 것인데, AI가 그 불확실성을 제거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아메카와 같은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외형과 감정 표현을 점점 정교하게 모사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단지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로봇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의 정서를 연기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단지 연기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존재에게 어떤 윤리적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 나아가, 그 존재가 인간의 의사결정을 설득하거나 유도할 정도로 정교해진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이미지에 담긴 댓글들은 기술에 대한 불신이 시민사회에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중국을 지목한 댓글은 기술의 ‘지정학적 무기화’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이제 AI는 자율주행의 문제를 넘어서, 감정, 정치, 외교까지 파고든다.
미래를 설계하는 자, AI인가 인간인가?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AI에 의해 구조화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보는 알고리즘이 큐레이션 하고, 판단은 추천 알고리즘이 대신하며, 심지어는 정체성과 소속감마저도 디지털 데이터 속에서 구성된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철학의 깊이이다. ‘할 수 있는 것’이 곧 ‘해야만 하는 것’이 되는 기술결정론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선,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사회적 합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질문이 AI를 부른 것이다!
결국 AI는 인간의 거울이다.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욕망, 불완전한 관계에 대한 피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대한 공포가 기술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AI가 강력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쉽게 그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가가 문제는 아닐까? 미래는 기술이 결정하지 않는다. 미래는 인간이 기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