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아카이브_동해
18일, 북평장날 북평오일장 문화광장에서 ‘흥’을 주제로 오월의 정신을 생각하고 ‘오월의 노래’를 불렀다.
‘북평장에 흥 내려온다’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오월의 노래는 무대를 세운 이들이나 이를 지켜보던 주민 모두에게 ‘기억의 날’이었다.
나는 이날 사회자로 무대에 섰다.
장터를 오가는 할머니들의 인사 소리, 상인들의 발소리, 무대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장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나눠진 박수와 노래는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 이날이 5월 18일이라는 사실은 가볍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오월은 단지 봄날의 어느 하루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외쳤던 시간의 상징이다.
그날 북평오일장의 무대에서 우리는 전통문화와 태권도, 검무 시범, 청춘악단과 함께 ‘오월의 노래’를 부르며, 그 정신을 기억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진 않았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사람’의 소중함과 ‘살아있음’을 이야기했다.
무대에 오른 출연진들은 모두 지역의 생활 예술인들이었다.
누군가는 민요를 불렀고, 누군가는 부채춤을 췄고, 어떤 이는 검무로 대나무를 베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예술이란 결국 ‘살아낸 자의 몸짓’ 임을 보여줬다.
청춘악단의 무대가 시작되자, 어깨춤을 추는 아주머니, 손주와 박자를 맞추던 할아버지, 어디선가 “이 맛에 사는 거지!”라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입니다.”
‘오월의 정신’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처럼 장터 한복판에서 서로를 보고 웃고, 가난한 마음도 덜어주는 공동체의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그날 나는 새삼 배웠다.
사회를 보면서 나는 내내 생각했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오월’은 단지 특정한 장소, 특정한 해의 일이 아니다.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사는 법을 기억하는 마음, 그게 오월의 정신 아닐까.
북평오일장은 그런 오월을 다시 살아내는 장이 되었다.
장터는 팔고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걷고 함께 노래하는 곳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왜 문화기획을 하는지를 다시 떠올렸다.
이날의 공연은 끝났지만, 그 무대 위에서 피어났던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그날의 공기 속에 떠돌던 ‘오월의 기운’은 분명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다음 장터에선, ‘오월의 노래’ 대신 ‘장마의 노래’가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어떤 계절도 사람의 마음을 이길 순 없다.
장터는 살아 있다.
그리고 사람도 살아 있다.
그게 바로 오월이다.
사진_ 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