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해변을 누비는 ‘모래게‘를 아세요?

181. 아카이브_동해

by 조연섭

동해시 망상해변. 해뜨기 전의 고요한 백사장 위로 발을 딛자마자, 수없이 많은 작은 생명들이 바삐 움직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반투명한 몸에 여러 쌍의 다리를 가진 이 작은 생물체들이 모래 위를 빠르게 기어 다닌다. 지역 주민들과 해변 산책객들은 이를 ‘모래게’라고 부른다.


최근 망상해변을 중심으로 이 ‘모래게’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사람들은 이들이 단지 해변의 귀여운 존재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생태학자들은 이들의 존재가 해변 생태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모래게, 이름 없는 환경지킴이

모래게는 정확히는 ‘모래 벗게(Orchestia spp.)’ 또는 ‘해변 요각류’로 불리는 갑각류로, 조간대(바닷물과 육지가 맞닿는 구역)에 서식하며 썩은 해조류나 유기물을 섭취한다. 이 과정에서 해조류가 무분별하게 썩어 해안가에 악취를 발생시키는 것을 막고,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어 다른 생물들이 영양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곧 ‘자연 청소부’ 역할이다. 동해안 해양생태연구소 김유라 박사는 “모래게의 증가는 해변의 생물 다양성이 살아있다는 지표입니다. 그들은 모래 속 유기물질을 먹고 다시 배설함으로써 모래의 통기성과 질을 개선해 줍니다. 즉, 해변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생물”이라고 설명했다.


선순환 구조의 출발점

모래게의 활동은 단순한 먹이 섭취 그 이상이다. 이들의 배설물은 미생물이나 해양 저서생물들의 먹이가 되고, 이는 다시 작은 어류나 해양조류에게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출발점이 된다. 이렇게 작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게의 존재는 해안가 생태계의 ‘퍼스트 마일(first mile)’로 불리며, 초기 생물 순환의 토대를 제공한다.


또한 모래게가 모래 속을 파고들며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미세한 구멍과 틈은 공기 순환을 도와 해변의 모래가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한다. 이는 식물의 뿌리가 자라기 쉬운 환경을 만들고, 해안사구 식생의 안정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망상해변에서 맨발로 걷기를 즐기는 주민 조혜진 씨는 “예전에는 이런 생물을 보지 못했는데 요즘은 아침마다 수천 마리가 모래 위를 뛰어다녀요. 덕분에 해변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추구하는 동해시는 현재 모래게 보호구역 지정 및 생태 해설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 중이다. 특히 ‘해변 걷기 명소’로서의 망상해변에 자연 해설과 생물 관찰이 결합될 경우, 지역 관광의 질적 전환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태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작고, 이름도 불분명한 생명체.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해변 생태계 전체를 움직이는 기반이다. 망상해변에서 본 모래게들은 오늘도 묵묵히 해변을 정화하며, 인간이 누리는 청정한 해변 환경을 지켜내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오래된 말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다.

실제 크기의 10배 이상 확대된 모래게,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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