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내려올 때 보인다!

189. 아카이브_동해

by 조연섭

동해시 노인회장 취임사

조연섭 | 문화기획자·스토리크리에이터


처음으로 시 노인회장 취임식을 방문했다. 현장을 방문한 지역구 의원은 ‘조국장 노인회 가입했어?‘ 질문을 던져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근무 중인 직장 대표깨서 출장 관계로 대신 참석했다. 취임 이용기 회장은 고은 시인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시로 취임사를 시작했다.

노인의 길을 걷는 이는, 꽃의 피고 짐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꽃은 명예를 품고 다시 핀다.


취임사는 삶의 무게를 견뎌온 세대의 존엄과, 다시 시대의 앞자리에 서는 자의 다짐이었다.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온 한 세대가 이제는 “노인 빈곤 OECD 최하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를 품에 안은 채, 존재의 의미를 다시 쓰려는 노력에 불을 밝힌 자리였다.


취임사의 핵심은 세 가지 언어로 요약된다. 기억, 명예, 그리고 소통.


먼저, 회장은 기억을 환기시켰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보릿고개의 가난.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이면에는 “모든 것을 바쳐온 노인세대의 헌신”이 있었음을 그는 반복해 강조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노인회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6700여 명의 삶을 위해 불러낸 역사였다.


다음은 명예다. 회장은 말한다. “욕망보다는 내려올 때의 명예를 생각하며 일하겠다.” 정치의 언어가 종종 권력의 추구로 해석되는 이 시대에, 노인의 언어로 ‘명예’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고전적이고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선언이다. 그것은 퇴임하는 전임 회장에 대한 예우이자, 스스로를 권력자가 아닌 ‘임기 있는 봉사자’로 위치 짓는 행위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장의 언어는 ‘소통’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확실한 일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 그것은 고집이 아닌 설득, 독주가 아닌 합주를 약속하는 언어였다. 그는 행정, 기업, 지역사회의 협치를 통한 포용적 노인 리더십을 제안한다. 이는 오늘날 지역정치의 새로운 모델로, 노인의 경험과 공동체적 지혜를 기반으로 한 ‘관계 중심형 거버넌스’로 해석될 수 있다.


이날 회장의 연설은 시민 사회의 어른으로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여전히 늦지 않았다는, 노년의 삶도 공공을 위한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오늘 동해의 노인회는 삶을 살아낸 자들이, 다시 지역을 이끌기 위해 꽃을 단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피워낼 두 번째 꽃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꽃은 내려올 때 보이기 때문이다.

이용기 회장님과 사모님, 사진_ 노인회DB
취임사,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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