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만학일기
8월 8일 불타는 금요일 밤, 8월 두 번째 논문지도 야학이 있던 날이다. 물론 한국 시간이다. 모니터 속 풍경은 작은 지구촌과 같았다. 방학이면 현장 교육자료 준비를 위해 한달살이를 떠나는 강윤주 지도교수님은 독일 베를린에서, 아티스트 출신 정유미 선배는 두바이에서, 늘 맑은 연극배우 김신혜 선배는 미국에서, 그리고 나는 동해에서. 우리는 줌(Zoom)이라는 디지털 창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지성의 향연을 펼쳤다.
방학을 맞아 베를린에 계시는 지도교수는 독일 역사 기반 전시에 참여한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전체 전시 과정을 디지털로 잇게하고 개인 성향까지 분석해 제공하는 디지털 기법을 적용한 전시였다” 라고 하셨다. 교수님는 “역사 전시를 이렇게 흥미롭게 본 것은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교수님이 방문한 그전시가 어쩌면 내가 쓰려는 논문의 결과 “개인기록이 자산이 되고 문화가 되는 현장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론적 배경이 된 하버마스 이론의 실제 선행연구를 과지로 제출한 나에게 교수님은 바쁜 시간에도 ‘하버마스 이론‘을 파고들어 연구의 이론적 토대로 삼고, 이해를 돕기 위해 팟캐스트까지 제작해 제출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셨다.
물론, 다음 과제는 더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이론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고 비판적 사유를 담아내라는 숙제. 교수님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론의 숲에서 길을 잃던 중, 든든한 지도가 될 하버마스 이론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딱딱한 학문적 논의 속에 부드러운 순두부처럼 말랑한 행복감을 느꼈던 나의 진심이었다.
이제 9월 1일, 다음 과제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교수님의 학교소식이 이어졌다. 서울대 박사 학위를 받고도 문화예술경영의 길을 더 깊이 파고자 우리 대학원에 입학한 분도 있다며 논문 빨리 끝내자고 한다. 신입생소식은 건강한 긴장감을 줬다. 이렇듯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학문적 동지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자극이자 응원이다.
독일, 두바이, 미국, 일본, 서울.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꿈을 위해 모니터 앞으로 모여드는 원우들의 식지 않는 만학열. 그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이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강의실이다. 나의 다음 논문 페이지도 기꺼이 행복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