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만학일기

지역, 소멸보다 ‘재생 가능성‘에 주목해야!

78. 만학일기

by 조연섭

최근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대상 마지막 선수과목 학부과목을 듣기 시작했다. 조희정 교수의 「로컬의 문화사회학」 강의다. 내용은 우리 사회가 지역과 지역재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강의 도입부에서 놀란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험이 없다. 과제가 있을 뿐이다." 행복했다 ㅋㅋㅋ. 학생들은 아마도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다음 하나는 '로컬과 지방 용어 자제하고 지역으로 쓰자'였다. 나 역시 수년간 주장했던 터라 더 반가웠다.

디자인_ 조연섭

흔히 지역을 ‘행정구역’이나 ‘수도권 바깥 변두리’로 치부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강의는 분명히 짚어냈다. 지역이란 단순 행정적 구획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며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생활세계라는 점이다. “로컬 이즈 에브리웨어(Local is everywhere)”라는 말은, 서울 역시 하나의 지역이고, 동네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교수는 지역을 둘러싼 다섯 가지 편견도 지적했다. 첫째는 전원생활, 웰니스, 도피처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만을 투사하는 ‘지역 낭만론’이다. 둘째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며 지역을 깎아내리는 ‘폄훼론’이다. 셋째는 중앙정부의 단기 지원금에 의존하는 ‘시혜론’, 넷째는 생활권 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채 행정구역만을 기준으로 삼는 ‘행정론’, 다섯째는 외국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사례 사대주의’다. 이 다섯 가지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지역 인식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히 기억에 남은 부분은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말은 2014년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여성인구 감소라는 단일 지표를 근거로 수많은 지자체가 2040년까지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소멸’이라는 단어는 현실을 설명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꺾고, 지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정당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 교수는 차라리 ‘재생’이라는 단어를 쓰자고 강조했다. 언어는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희망적인 메시지도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버려진 공간과 자원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폐조선소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폐양조장이 젊은 세대의 창의적 거점으로, 옛 산부인과 건물이 감각적인 조명가게로 변모하고 있다. 이름 없는 해변이나 낡은 창고도 ‘발굴 자원’이 되고, 창의적 해석이 더해지면 ‘창조 자원’으로 거듭난다. 교수는 이를 두고 “시간은 카피할 수 없다”는 명언을 전했다. 오래된 것은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며, 그것이야말로 지역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지역은 소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다. 낭만적 판타지나 부정적 폄훼가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흔적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재생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의 자원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보고, 발굴하고, 새롭게 해석할 주체가 누구인가이다.


지역소멸이라는 부정적 담론에 갇히기보다는, 재생의 가능성을 말하고 실천할 때다. 지역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주되며 재생하는 삶의 무대다. 우리의 역할은 그 무대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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