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만학일기
이흥재 교수님 신간 『차, 예술을 마시고 문화를 우려내다』 를 읽고
추암의 바닷바람이 마지막 여름의 그림자를 밀어내던 아침, 585일 차 맨발 걷기를 마치고 도착한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한 권의 책이 단정히 놓여 있었다. 차와 사람, 차와 문화, 그리고 상상력의 세계를 엮어내며, 기억의 자산을 치유의 언어로 피워 올린 이흥재 교수가 손수 보내준 신간이었다.
차는 단순한 기호품일까, 아니면 삶을 성찰하는 도구일까. 추계예술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한국전통문화대학교·서울사이버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 중인 이흥재 교수의 신간 ‘차, 예술을 마시고 문화를 우려내다 ‘ 는 이 물음에 대한 깊은 답을 제시한다.
책은 번아웃, 불안, 관계 단절 등 현대인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회피가 아닌 성찰의 대상으로 제시하며, 차 한 잔을 매개로 몸과 마음, 예술과 공동체까지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오늘, 당신에게 차 한 잔의 시간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기 돌봄과 사회적 회복이 맞닿아 있음을 일깨운다.
1부에서는 고통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탐구한다. 찻잎이 상징하는 치유의 힘은 억제가 아닌 회복의 길로 독자를 이끈다.
2부에서는 차가 지닌 생물학적 효능을 근거와 함께 설명한다. 불면과 불안에는 캐모마일, 염증과 통증에는 생강차와 강황차, 소화 장애와 피로에는 국화차와 페퍼민트가 도움을 준다는 사례는 과학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책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차는 인문·예술·과학·정책을 잇는 사회문화적 자산이며, 공동체 회복을 위한 철학적 선언이라는 것이다. 이흥재 교수의 호인 ‘오완(悟碗, 깨달음을 담는 그릇)’처럼, 찻잔은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성찰의 도구가 된다.
평소 이흥재 교수는 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한 지역문화아카데미 고급과정 좌장과 각종심사 등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 신간을 통해 다시금 느낀 것은 차 한 잔의 여유가 개인의 치유는 물론 사회적 연대와 지속가능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또 다른 문화적 자산으로 다가온다.
“차, 예술을 마시고 문화를 우려내다”는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돌보는 예술적 시간”을 제안하는 책이다. 일상의 작은 습관이 사회적 사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문화인문서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