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지역N문화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간소해지고, 명절은 이제 여행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큰집, 고향까지도 최근 몇 년 사이 명절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추석, 설 ㄱ등 명절을 맞아 집집마다 북적이던 고향집은 조용해지고, 고속도로 대신 공항과 역에 사람들이 몰린다.
전통적으로 차례는 명절의 중심이었다.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한다는 의미가 컸지만, 현실에서는 여성들의 과중한 노동과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어 왔다. 차례 음식 준비를 둘러싼 부담, 형식화된 절차에 대한 피로감은 ‘차례 간소화’와 ‘차례 폐지’라는 변화를 낳았다. 과일과 떡, 간단한 나물만 올리거나 아예 차례를 생략하고 가족 식사로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제 명절은 더 이상 “의무의 시간”이라기보다 “휴식과 선택의 시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차례 대신 여행’은 이미 하나의 새로운 관습처럼 자리 잡았다. 가족 단위로 근교로 떠나거나, 아예 해외로 휴가를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명절을 ‘쉼’과 ‘재충전’의 기회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의 태도가 부모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면서,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명절 여행’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가정은 차례를 형식적으로 지키되, 이후 시간을 가족 모임이나 소풍, MT처럼 활용한다. 성묘도 온라인 제례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예를 다하는 방식 자체가 다양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가족 간의 합의와 소통, 그리고 마음의 진정성이다.
명절 문화의 변화는 사회 구조와 맞물려 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확대, 핵가족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커진 결과다.
결국 오늘날의 명절은 “어떻게 조상을 기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가족과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전통 의례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가족의 웃음과 휴식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의례도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무조건 지키거나 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각 가정이 합의한 방식으로 명절을 재해석하는 일이다. 명절의 본질은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데 있다. 그 방식이 차례상이든, 여행지의 식탁이든, 결국 남는 것은 “함께한 기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