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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역N문화

한가위, 잘 쉬셨습니까?

25. 지역N문화

by 조연섭

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추석 잘 쉬셨습니까?”라는 인사가 오가는 오늘이 되겠네요. 이번 명절은 유난히 많은 생각을 남겼습니다. 달력 위에 붉게 이어진 긴 연휴는 마치 우리에게 ‘쉼’을 선물한 듯 보였지만, 막상 그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를 돌아보면 각자에게 다른 얼굴의 명절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취준생 딸, 사진_ 조연섭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올 추석 연휴의 가장 큰 기쁨은 1년 가까이 못 만났던 딸아이, 우리 ‘공주님’을 만나고 마음껏 웃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빠의 40대 실업자 신세를 소환하며 취준생으로 바쁜 딸에게 ”힘내라, 건강이 최고다.“라고 전했죠. 딸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어떤 풍성한 차례상보다 마음이 먼저 차올랐습니다. 명절은 결국 ‘사람이 돌아오는 시간’이란 걸 다시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오랜만에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향하는 고향길, 고향 후배가수 박상철이 가수 협회 회장이 됐다는 축하 현수막도 만났고 고향의 어르신들의 세월의 깊이가 보이는 인적들이 하나 둘 보입니다. 깊은 산길을 홀로 오르며, 조상에 대한 그리움과 내 안의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예전엔 가족이 함께 오르던 그 길을 이번엔 혼자 걸었습니다. 바람이 솔잎을 흔들며 건네는 위로 속에서, 세월의 무게만큼 내 마음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연휴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습니다. 대학원 과제와 논문 연구, 참고문헌 정리, 발표 준비까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연휴가 끝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피곤함보다는 ‘보람’이 남았습니다. 쉼이란 꼭 멈추는 시간만을 뜻하지 않음을, 때로는 몰입과 성장 속에서도 인간은 회복될 수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명절의 풍경은 세대마다 다르게 흘러갑니다. 예전에는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명절’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조용히 산책하며, 또 누군가는 배우고 일하며 자신의 길을 다집니다. 전통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형태를 바꿔 시대의 호흡에 맞게 살아 있을 뿐입니다.


“한가위 잘 쉬셨습니까?” 라는 인사,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방식으로 ‘쉼’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는지를 묻는 문화적 질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공부와 일이 곧 쉼이 됩니다.


이번 추석, 저는 사람을 통해 위로받고, 산을 통해 나을 돌아보며, 배움을 통해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모두가 저에게는 ‘쉼’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달력의 색은 검게 돌아왔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한가위의 둥근 달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 빛이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비추며 묻습니다.

“당신은 이번 추석, 어떤 쉼을 얻으셨습니까?”

시골에서 만난 축하 현수막,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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