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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역N문화

‘전보’에 담긴 묵호의 기억, 이까 개락!

30. 지역N문화

by 조연섭

15일, 동해 추암에 해암정을 세운 '심동로 얼 선양, 중장기 브랜드 전략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단국대학교 박용재 초빙교수(전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와 진행 미팅이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 핵심은 로컬리티(동해다움)의 가치다.

사업 담당자 김 00주임 역시 아버지와 잊지 못할 기억의 일화를 소개했다. 동해안 묵호를 배경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아버지 추억이다. 전화도 없던 시절, 아버지는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에게 '오징어가 많이 났다는 소식'을 전보를 보냈다고 한다. 글자는 네 글자, 보낸 네 개 글자 일화를 말하던 주임은 "혹시 그 네 글자 전보 글을 아세요?" 라며 질문을 던졌다. 교수와 나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 주임은 잠시 적막을 깨고 " ‘이까 개락’이랍니다."라고 했다. 옆에 있던 박 교수는 "그 짧은 전보 속에는 바다의 소식, 생계의 희망, 기다림의 마음이 함께 실려 있다."라고 한다. 바로 그런 "소박한 기억들이 로컬의 소중한 인문자원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시인이자 뮤지컬 전문가 다운 표현이다.

회의 중, 사진_ 소담채 DB

“전보, 글자가 많으면 비쌌어요. 그래서 줄여 쓴 거예요. ‘이까 개락’, 오징어가 많이 난다는 뜻이죠.”


전보 한 장이 귀하던 시절, 가족들은 “오늘은 오징어가 많이 났다”, “이제 집에 돌아간다”는 소식을 그 네 글자에서 읽어냈다. 바다와 육지가 문장 없이도 이어지던 시대, 그 소박한 통신 방식이야말로 동해 사람들의 지혜이자 정서였다.


지금은 휴대폰 한 통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당시 묵호 어르신들은 여전히 새벽 어화(漁火)의 불빛 속에서 그 시절의 정취를 기억한다. 고깃배 집어등이 새벽 바다 위에서 일렁일 때, 그 빛은 단순한 어업의 장면이 아니라 한 세대의 삶을 비추는 기억의 등불이 된다.


회의를 진행하던 박 교수는 이 같은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확장하자고 한다. 단순한 상품을 파는 ‘플리마켓’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문화시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이름하여 ‘동해 스토리마켓’. 어민의 손끝에서, 가족의 기억에서, 그리고 바다의 불빛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새로운 지역 콘텐츠로 재탄생시키자는 것이다.


문화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이까 개락’의 네 글자에는 생업의 고단함보다 더 깊은 정서가 깃들어 있다. 바다는 풍어를 알리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단단해진 가족의 사랑이다.

동해의 새벽은 여전히 푸르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네 글자가 반짝인다.


“이까 개락.”... 그것은 한 세대의 언어이자, 오늘 우리에게 남은 가장 따뜻한 기록이다.

추억의 묵호항, 사진_ 동해문화원 DB
[이까 개락] 이까는 오징어의 강원지역 방언이며, 개락은 <방언 속에 내 고향이 있었네>(김성재, 박이정, 2011)에서 설명은 이렇다. 1936년 9월 초 강원도에 큰 물이 진다. 이 일을 병자년에 일어난 큰 물이라고 '병자년포락, 병자년 개락'이라고 했단다. '포락'은 성천포락(成川浦落)의 준말인데 '논밭이 강물에 씻겨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개락'도 큰비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강물과 냇물처럼 많다는 뜻으로 쓴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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