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노트_맨발걷기-670
맨발 걷기 670일, 추암해변 새벽 공기가 뺨을 스친다. 영상 14도, 올가을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이다. 이른 아침 강한 바람과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현장, 맨발 걷기가 시작되고 잠시 뒤 땅속 자유전자는 발끝에 이어 심장으로 전해진다. 파도 소리는 여전하지만, 하늘은 며칠째 흐림을 멈추지 않는다.
이 비는 대체 언제 그칠까. 일기예보는 금요일까지 비 소식이다. 단순 날씨 변덕으로 보기에는 마음 한켠이 불안하다. 최근의 비는 ‘기후’의 언어가 아니라 ‘재난’의 언어처럼 들린다.
가을비는 본래 계절의 시인이다.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겨울의 문턱을 닦는, 순환의 리듬 속에 존재했다. 하지만 요즘의 비는 그 리듬을 잃었다. 쏟아내고, 멈추지 않고, 흙을 무너뜨리고, 삶의 터전을 잠식한다. 기후학자들은 이미 “이상기후”라는 말보다 “재난사회”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쓴다.
지구가 뜨거워진 만큼 우리의 일상은 차갑게 식어간다. 그 온도차가 바로 지금의 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느끼는 건 자연이 내는 신호음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개발, 편리함이 결국 자연의 순리를 밀어냈다는 경고다. 이젠 “비가 많이 온다”가 아니라 “자연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동안 재난을 ‘사건’으로 여겨왔다. 태풍이 지나가고, 복구가 끝나면 일상이 돌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재난은 하나의 상태다. 끝나지 않는 장마, 미세먼지,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 모두가 연결된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
이제 ‘기상이변’이라는 표현은 너무 순하다. 이건 사회의 구조적 이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구조적 폭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맨발로 걷는다. 차가운 모래 위를 딛는 일은 자연의 언어를 배우는 행위다.
비가 내리는 이유를 단지 기압골이나 태풍의 잔재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있다.
속도를 멈추지 못한 사회,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여긴 문명, 그리고 불편함을 회피한 우리의 무감각 속에 있다.
맨발로 모래를 밟는다는 건, 세상과 다시 연결되겠다는 의지다.
비의 원인을 묻기 전에, 이 비를 만들어낸 인간의 삶의 방식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지금 내리는 비는 하늘의 분노가 아니라, 우리가 흘려보낸 눈물의 귀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