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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맨발 걷기, ‘너울성 파도’ 주의

166. 노트_ 맨발걷기

by 조연섭

686일째 맨발 걷기 아침 추암해변이다. 오늘 동해바다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멀리서부터 낮게 울리던 파도는 점점 깊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숨을 고르듯 몰아쳤다. 일명 숨은 파도, 너울성 파도 같았다. 너울성 파도는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저 지형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일시에 높아지며 해변을 덮치고 현상“을 말한다. 평소 고요하던 가장자리 바위 옆 백사장까지 물이 삼켰다. 촛대바위 뒤편 백사장을 걷던 이들도 갑작스러운 물살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제 제천 의림지의 흙길을 맨발로 걸으며 느꼈던 것은 ‘대지의 온기’였다면, 오늘 동해의 파도는 ‘자연의 경고’였다. 인간은 흙 위에서는 따뜻하고, 물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맨발 걷기가 ‘생활 철학’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연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일이다.


너울성 파도는 예고 없이 밀려온다. 수면은 잔잔하지만 그 속에서는 수 미터 높이의 에너지가 쌓인다. 해안 가까이서 사진을 찍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발 밑 모래가 휩쓸리고 중심을 잃기 쉽다. 특히 해변 맨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늘 같은 날은 “자연의 변화를 읽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파도가 들려주는 소리, 바람의 세기, 조류의 흐름이 주는 경고의 언어다.


해변 맨발 걷기의 본질은 ‘접지’이다. 땅과의 접지, 바람과의 접속, 그리고 자기 내면과의 접속. 그러나 이 접속이 경계 없는 침범으로 변할 때, 자연은 언제든 반응한다. 요즘 SNS에는 해변에서 위험하게 촬영하거나, 바다 가까이 다가가는 맨발 여행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하지만 그 한 컷의 낭만을 위해 잃을 수 있는 것은 한 생명이다.


문화적으로도 이 시점의 너울성 파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간의 속도와 욕망이 앞서갈 때, 자연은 늘 “조금만 물러서라”라고 말한다. 걷기의 예술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아니라, 멈추어 서는 지혜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바다는 말없이 가르친다. “가까이하되 넘지 말라.”


동해의 겨울은 곧 다가온다.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바람은 매서워질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단단한 발로, 그러나 더 겸허한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맨발의 철학은 ‘도전’이 아니라 ‘존중’이다. 오늘의 바다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추암 너울성 파도, 사진_ 조연섭
추암을 걷는 맨발러, 사진_ 조연섭
출근길 맨발 걷기,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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