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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역N문화

동해에서 피어난, '생활예술 공론장'

29. 지역N문화

by 조연섭

가을의 끝자락, 바다의 숨결이 스며든 도시 동해에 ‘생활예술의 향기’가 짙게 번진다. 2일 전 시민뮤지컬이 막을 내린 그 자리엔 아직도 박수의 잔향이 남아 있고, 20일 저녁부터는 그 감동이 ‘창작예술 Monif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멈추지 않는 성난 가을비와 10월의 바람이 스치는 20일 저녁 6시 30분, ‘제2회 동해민족예술제' 일환으로 동해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창작예술 'MOTIF'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초딩 동창의 누나, 친구의 아내, 태어나서 가장 오랜 술친구 정호 형님 등 모든 지인이 작가로 변신한 자리다. 그야말로 사회적 예술이 생활로 스며드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현장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는 ‘생활’과 ‘예술’이 만나


개막식이 시작되고 싱어송라이터 김난영 작가가 통기타 반주로 부르는 노래는 가을을 더 가을답게 한다.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발표한 곡, '어디로 가야 하나' ‘Donde boy‘ 가 옛 다운타운 방송시절 추억을 소환한다. 심경희 작가의 플루트 연주, 예비군 중대장 출신 뮤지션, 손명목 작가의 일렉기타 연주 등 참여 작가들이 스스로 마련한 축하공연과 함께 펼쳐진 이번 전시는 미술은 물론, 창작과 실천이 맞닿은 사회적 예술(social art)의 실험장이다.


100여 점이 넘는 작품들 사이 전시실을 거닐다 보면, 시와 회화, 음악과 조형, 화폐, 공예 등이 서로의 숨을 나눈다. 미술작품이 전시된 대전시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화폐가 주인을 제대로 만나 문화가 되는 로컬리티 가득 담긴 화폐작품전시 현장과 멋진 캘리그래피도 만날 수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온 장면은 송강 정철이 사랑했던 ‘소복’을 잊지 못해 망상해변 보름달 아래에서 지었다는 시에 등장하는 ‘바랄 망(望), 상스러울 상(想)’ 망상을 세 폭의 회화로 재해석한 김정호 작가의 작품은 송강 정철의 소복 사랑을 시각언어로 옮긴 빼어난 시도였다.


심경희 작가의 자작나무 숲 그림은 다가올 겨울을 한 폭에 담았다. 빛과 그림자의 간극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박소미 작가는 할미꽃 등 일상의 파편을 조형언어로 엮어내며, 특히 가수 김난영작가는 자작나무에 핀 장미기타 꽃을 통해 음악과 색채의 경계를 허물어 가수이자 화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줬다. 이들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강렬하다.


예술이 일상으로, 일상이 예술로


이 전시의 가치는 생활예술의 민주성에 있다. 전문예술이 아닌, 시민의 감각과 호흡으로 만들어진 예술, 그것이야말로 ‘사회적 예술’의 본질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예술의 현장’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목격한다. 그것은 미학이 아니라 태도이며, 작품이 아니라 관계의 예술이다.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전시축제는 동해라는 지역의 정체성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문화적 공론장이다. 그것이 바로 동해 민족 예술제의 깊은 의미다.


예술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


전시는 오는 10월 24일 금요일 오후 5시까지 계속된다.

해가 바다로 내려앉을 무렵, 전시장 한켠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이 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오늘 동해의 바다는, 그 말을 그대로 품은 채 저녁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유재민 강원민예총 동해지부장은 “예술은 거창한 무대에서만 피는 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이웃의 손끝에서 성장한 생활의 문화, 그 삶 속 문화의 숨결을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라며 "주말까지 이어지는 제2회 동해민족종합예술제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라고 했다.


[인터뷰] Q_ 조연섭, A_ 김난영

자작나무 숲에 장미로 피어난 기타 장미가 눈에 깊게 들어왔다. 가수 김난영 민예총 동해지부 미술 협회장 작품이다. 나는 질문을 던졌다. “자작나무에 핀 장미 기타의 의미에 대해서 알려달라?”

질문에 대해 김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기타도 나무로 만들어졌잖아요.
음악을 들으며 자작나무가 자라고 숲이 되고, 그 안에 수많은 생명과 영혼이 깃듭니다.
멜로디 속에서 모두가 행복을 꿈꾸고, 그 음악 안에서 장미가 피어났어요.

장미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살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장밋빛 인생’을 그리며, 외로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어요.

기타는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뿌리도, 꽃도 피지 않아요.
그러나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죠.
그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자작나무 숲 기타에 핀 그 장미는 저 김난영일지도 모르죠” 라며 평소 본인의 미술철학을 마치 노래하듯 밝혔다.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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