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지역N문화
동해문화원 문화학교 임원회의가 열렸다. 원장님을 대신해 사무국장으로 인사말을 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원이란,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중심에서 자신을 헌신하며 조직을 위해 일하는 참 리더다.”
내가 한 말이지만 내 마음에도 오래 남았다.
사람들은 흔히 리더를 ‘앞장서는 사람’으로 이해하지만, 공동체의 리더는 오히려 뒤에서 조용히 지탱하는 사람이다. 남의 공을 드러내고, 스스로는 그림자처럼 물러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이들이 문화원을, 그리고 지역의 문화를 지탱하고 있다.
이어 식사자리로 이동했다. 옆 자리에 앉은 대금교실의 젊은 회장이 말했다.
“대금은 소리 내기가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찡했다. 우리의 소리, 우리의 전통이 그만큼 어렵고 고된 길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견디며 소리를 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의 혼이 깃든 문화가 된다.
또 한편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다. 매듭교실의 젊은 총무와 중년의 회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모녀였다. 함께 수강하며, 함께 임원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요즘세상에 모녀가 같은 문화학교 교실에서 같이 배우기도 힘든 일인데, 같은 조직에서 봉사하는 일은 더욱 보기 드문 일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두 분은 정말 멋진 매듭이네요.”
매듭은 끈과 끈이 만나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예술이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오래될수록 아름답다. 모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인연, 그리고 대금의 숨결처럼 묵묵히 이어지는 전통의 손길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의 본질 아닐까?
문화학교의 임원들은 그런 매듭을 짓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소리를 내기 어려운 대금처럼 버텨주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실을 묶어 공동체를 단단히 엮어낸다. 그들의 헌신으로 문화의 끈이 이어지고, 지역의 숨결이 살아난다.
오늘 회의는 서로의 마음을 매단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다.
대금의 바람이 매듭의 손끝에 닿아 ‘우리의 것’을 지탱하는 순간,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문화의 리더십, 그리고 공동체의 온기를 보았다.
전국 232개 지역문화원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의 내용은 서화와 예악, 취미교실 등이다. 문화원마다 최소 10 강좌 최대 몇백 강좌를 운영하며 최소 300명에서 몇천 명 정도의 수강생을 배출하는 등 규모는 다소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