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지역N문화_ 삼척
삼척필하모닉오케스트라(대표 최혜리, 단장 정성목, 지휘 차중훈) 제2회 정기연주회가 11월 1일 오후 삼척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번 연주회는 지역성과 예술성, 인간의 존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공존하는 무대였다.
나는 이날 연주회 사회를 맡으며, 무대의 흐름 곳곳에서 ‘로컬리티‘의 본질과 지역다움의 힘을 확인했다.
공연의 첫 무대는 기초 생활예술과 엘리트 예술의 접목, 영화 어벤저스의 주제곡으로 시작됐다.
전통 타악 퍼포먼스팀 ‘타울림’의 강렬한 북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역동성은 어벤저스가 상징하는 정신, ‘협력’과 ‘희생’이 잘 담긴 지역의 생명력, 즉 지역다움의 리듬을 깨우는 신호처럼 들렸다.
이어 ‘황야의 무법자’, ‘사운드 오브 뮤직’, ‘러브스토리’ 등 12편의 추억의 명화 속 음악을 소환하는 명 연주가 이어졌다.
나는 다음 순서를 소개하며 연주 소감을 말했다. “러브스토리에서는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가 눈밭에서 장난스럽게 눈덩이를 던지며 사랑을 나누는 상징적인 장면,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서부극의 존웨인, 존포드 감독과 멋진 주연배우들의 롱부츠 장면들이 기억난다.”라고 했다. 그 속에는 지역다움의 힘, 지역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상호존중의 모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된 곡들은 각 곡이 상징하는 철학과 시대의 맥락은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첼리스트 박다희가 연주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은 잃어버린 악보가 세상에 다시 빛을 본 역사처럼, “지역의 기억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행위“와 닮아 있었다.
삼척중학교 1학년 꿈나무 피아니스트 이재빈이 협연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청춘의 순수함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예술의 가능성을 상징했다.
후반부의 영화음악들은 사회적 시사점을 담고 있었다.
‘라라랜드’의 테마는 개인의 꿈과 현실의 균형을, ‘레미제라블’은 자유와 정의를, 마지막 ‘라스트 오브 모히칸’은 기록과 역사의 가치, 소멸해 가는 존재의 아픔과 기록의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모히칸’의 주제는 전쟁의 역사, 그리고 사라져 가는 부족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인구소멸의 시대적 비유로 다가왔다. “사라짐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자”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50명이 넘는 단원이 함께한 삼척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이날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모든 곡들이 ‘사람’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예술인, 생활예술인, 차세대 연주자 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만들어낸 조화는 로컬리티의 본질, 즉 ‘복제할 수 없는 문화’를 완성했다.
지역 예술의 가치는 거창한 산업화가 아니라, 그 지역 사람의 손끝과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 무대가 명확히 증명했다.
사회자로서 나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로컬리티는 지역다움입니다. 그 핵심은 사람입니다. 오늘 연주회를 준비한 지휘자와 대표, 단장과 50여명 단원 한분 한분이 ‘삼척다움’의 중심입니다. 예술은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말은 삼척필하모닉이 보여준 공연의 정신 그 자체였다.
연주는 끝났지만, 울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소리는 악기를 통해 들려줬으나 ‘사람이 중심이 되는 창의적이면서도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로컬문화’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클래식의 언어로 지역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기록과 예술, 그리고 공동체의 생명을 잇는 삼척필하모닉의 이번 실험은 앞으로 지역 연주회 문화의 새로운 깊이와 모델로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