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만학일기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자문회의서 패러다임 전환 촉구
“문화연대 "문체부 '스몰 비즈니스 논리' 벗어나 사회혁신 어젠다로"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6~2030) 수립을 위한 분야별 자문 토론회에서 현행 지역문화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사업 과잉 공급과 관료화된 형식주의를 벗어나 '사람과 커뮤니티, 시간'에 집중하는 생태학적 접근을 주문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 11. 19일부터 21일까지 전라·제주권, 강원·충청권, 경상권에서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권역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되는 이 기본계획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이어 수도권 및 종합토론회가 11월 27일 목요일 오후 서울 예술가의집에서 열렸다.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교수)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형적인 '스몰 비즈니스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혁신 어젠다를 통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토론문을 통해 현 지역문화 정책의 다섯 가지 핵심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과거 정책 실패에 대한 객관적 평가 선행돼야
이 위원장은 우선 지난 정부 시기 지역문화 정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지역문화 정책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스스로 지역문화 정책의 현장과 거버넌스를 공식적으로 무력화시켰다"며 "그 결과 정부의 지역문화 정책은 시대착오적인 '국가-행정-개발-공급-결과' 중심으로 퇴행했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지역문화협력위원회 폐지 추진, 법정문화도시 사업을 둘러싼 정책 혼선과 파행 행정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재발 방지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역은 정책 대상 아닌 '시대정신'
이 위원장은 지역문화 정책 수립에서 '지역'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후위기, 기술과잉, 초고령사회, 수도권 과밀화와 지역 양극화 등 급격한 사회변동과 다중위기 시대에서 지역은 더 이상 정책의 대상이나 행정의 전달체계가 아니라 중요한 가치이자 원리로 이해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성장, 생태문화,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 순환경제, 문화자치 등이 중요한 정책 의제로 부상하는 지금, 지역은 하나의 '시대정신'"이라며 "지역문화 정책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 담당 부처의 사업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사업 과잉 공급 중단,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현재 지역문화 현장의 경우 사업은 과잉 공급되고, 일하는 방식은 관료화… 형식화되었으며, 문화예술인은 불안정한 용역 노동을 강요받고, 주민은 소비자로 규정된 채 동원되는 구조가 일반화됐다"라고 지적했다.
"농산어촌 주민들에게 가장 바쁜 농번기에 찾아가서 8회 차~12회 차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일시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삶에서 필요한 연결과 지원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함께 해줄 이웃·동료로서의 정책이 필요하다" 마을활동가, 동네예술가, 문화 PD 등 '사람 정책'이 지역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이자 창의적인 일자리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1000만과 고창 5만의 일상은 다른 세계
지역 다양성에 대한 적극적 고려도 요청됐다. 위원장은 "서울과 고창(전북)은 거의 같은 규모의 물리적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1000만 서울의 일상과 5만 고창의 일상은 정말 다른 세계"라며 "대부분의 지역문화 정책이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로 귀결되고, 특성화를 강요하며 지역의 주민이 아닌 업자들을 위한 이벤트만을 양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중앙정부보다 광역 지자체에, 광역 지자체보다는 기초 지자체에, 기초 지자체보다는 전문 지원기관에, 공공기관보다는 시민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문화자치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지역문화위원회·진흥기금 등 전환적 정책 구조 필요
마지막으로 추진체계와 행정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현행 문화부의 정책 연계 역량이나 공공기관 운영 방식으로는 아무리 그럴듯한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가칭) 지역문화위원회와 지역문화진흥기금 등에 대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역문화 정책을 둘러싼 정부·문화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내 관료주의 문화행정의 개혁을 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은 '포용과 혁신의 지역문화'를 비전으로 문화자치 생태계 구축, 생활기반 문화환경 조성, 지역 고유문화 발굴·활용, 문화적 가치를 통한 지역 혁신 등 4대 전략을 추진해 왔다. 제3차 계획은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 과제로 남았다.
지역문화진흥법 제6조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마다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을 수립·시행·평가해야 하며, 제3차 계획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