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지역N문화
동해 커피 명소 ‘감성‘ 이성희(남•70)대표는 수십 년 전부터 전 세계 커피여행을 다니며 커피를 공부한 체육 전공의 커피 전문가다. 며칠전 아침 그 곳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옆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커피는 교과서가 없어요.” 궁금해서 물었다. 정말 그렇냐고. 그렇다고 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데 어떻게 정답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커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교과서에 익숙한 세대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정부 사업에서도 매뉴얼이 있고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걸 따르면 안전하다고 배웠다. 틀리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30년을 일하다 보니 알게 됐다. 교과서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지역문화 사업도 그렇다. 서울에서 성공한 프로그램 있으면 지역에 그대로 가져온다. 당연히 안 먹힌다. 왜냐하면 서울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동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르고, 생활이 다르고,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다. 하버마스가 말한 ‘생활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중앙 정부 매뉴얼은 그걸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늘 고민이다. 사업 계획서에는 교과서대로 쓰되, 실제로는 우리 방식대로 해야 한다. 이중 장부 같은 일이다.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문화란 게 원래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랜 시간 만들어낸 거니까. 누가 밖에서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재미있는 건, “교과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사장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수십 년 커피만 연구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교과서 필요 없어”라고 하면 그건 그냥 무책임이다. 들뢰즈가 이야기한 ‘차이와 반복’처럼, 반복 속에서 자기만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전문가다.
우리는 지역 전문가들을 잘 안 본다. 서울에서 유명한 교수 부르면 강연료 몇백 내고, 정작 옆 동네에서 40년 된장 담근 사람은 그냥 지나친다. 동해에서 평생 커피 연구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가진 게 바로 ‘현장지식’이다. 책에 안 나오는 지식. 몸으로 부딪치며 쌓은 경험.
요즘 논문 쓰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지역문화아카이브가 뭘 기록해야 하는가. 중앙에서 내려온 정책 문서? 공식 행사 사진? 그것도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런 현장의 목소리 아닐까. 교과서에 안 나오는 이야기들. 그게 진짜 지역의 문화다.
“교과서가 없다”는 말은 각자 다르다는 걸 인정하자는 이야기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말자는 것이다. 커피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오늘 아침 커피 한 잔 마시며 배웠다. 역시 현장에 답이 있다.
커피전문점_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