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만학일기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학술대회, 독일 시민연극이 던진 화두
2026년 1월 10일 오후 2시, 경희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문화예술경영 전공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반대학원 체제 전환을 맞이한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이 던지는 하나의 학술적 선언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이날 학술대회는 교수 논문 3편과 대학원생 논문 2편 등 총 5편 논문이 발표됐다. 발표의 키워드는 공공성, 지역성, 공동체성, 디아스포라적(이주자 공동체)정체성 등이었다.
첫 발표로 문화예술경영 전공 강윤주 지도교수가 발표한 “프로젝트성을 넘어선 독일 지역 공공극장 시민연극 제도의 사회적 합의“ 는 제목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사유의 궤적을 그려냈다. 이 논문은 최근 SNS를 통해 표지를 공개한 따끈 따끈한 논문이다. 발표는 장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단단했다. 질문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지역이 소멸해서 예술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예술이 공공성을 회복하지 못해 지역 소멸이 가속화된 것인가.”
교수는 독일 드레스덴과 뒤셀도르프 등 현지 사례를 바탕으로, 시민연극을 일시적인 ‘참여형 프로젝트’보다 공공극장의 ‘정규 제도’로 해석했다. 독일의 시민연극은 별도의 예산과 전담 예술감독, 상설 무대와 정규 레퍼토리를 완비한 하나의 독립된 극장 시스템이다. 이곳에서 시민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무대 위의 주체이자 공공극장의 공동 소유자로 기능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시민연극 참가자를 비전문가가 아닌 ‘일상의 전문가’로 규정한 개념이다. 버스 기사, 콜센터 노동자, 질환 경험자 등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그들의 경험은 그 어떤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 미학적 자산이 된다. 여기서 미학의 중심축은 형식적인 기교가 아닌 삶의 진정성으로 이동한다.
발표의 인사이트는 시민연극을 결코 낭만화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독일 시민연극은 엄격한 윤리적 장치를 전제로 작동한다. 사전 면담을 통한 트라우마 점검, 연극교육학자의 상시 개입, 그리고 상담 및 치료와의 명확한 거리 두기가 그것이다. 시민연극은 일반 ‘치유 프로그램’보다 안전한 공공의 장에서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복지 경계에 서 있되, 결코 복지로 매몰되지 않는 팽팽한 긴장이 그 본질이다.
교수는 한국 지역 예술계의 현실을 향해 뼈아픈 비판을 던졌다. 현재 국내 시민 참여 예술은 대부분 일회성 ‘프로젝트 경험’으로 소모되고 있다. 올해의 성과가 내년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참여자인 시민과 예술가 모두 신뢰를 쌓기 어렵다.
반면 독일의 시민극단은 정규 시즌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시민 배우는 회당 평균 25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그 결과 시민극단 공연은 국립극장 전체 관객의 10%를 차지한다. 참여 이후 극장 방문율이 6배 이상 증가한다는 통계는, 시민연극이 소모적 비용이 아니라 공공성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증명한다.
교수는 “이 연구는 한국 지역 예술 생태계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라고 몸을 낮췄다. 안산문화재단에 근무하는 조형준 원우(공연부장) 면담사례에서 보듯, 시민연극의 정규 부서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말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예산 논리보다 공공극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다.
공공극장은 건물이 아니다. 시민이 자신의 삶을 공적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장소, 그 목소리를 예술로 수용하는 사회적 합의 그 자체다. 즉, 공공극장은 ‘관계’다.
이번 학술대회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 전공이 왜 일반대학원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박사과정 개설이라는 제도적 변화 이전에, 이미 이곳은 공공성에 대한 수준 높은 담론이 치열하게 오가는 현장이었다.
질문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졌다. 우리는 시민을 영원한 관객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무대의 진정한 주인으로 맞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