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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Jul 08. 2023

근대산업의 시작, 동해시!

5. 동해학 아카데미, 문화학당

문화학당, 사진_조연섭

동해문화원 <동해학 아카데미>8번째 문화학당이 <동해시 산업사>를 주제로 문화원 대강당서 7일  오후 진행됐다. 이날 강의는 수강생과 시민기록가 등 30여 명이 참여했으며 동해학기록센터 홍협(남, 62) 연구원이 강사로 참여했다.


영상과 사진 등 오랜 시간 준비한 방대한 자료로 강의를 시작한 홍 연구원은 강원 남부 권 지금의 동해시는 대한민국산업의 역사를 살펴볼 때 <근대산업의 발상지의 중심>에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자긍심을 갖아도 된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연구원은 과거부터 강원남부 지역 북삼면과 송정지역은 대한민국의 잘 사는 마을로 농사가 잘되고 자연재해가 없고 고리채 업자도 없던 마을로 불렸다. 또 철기문화유적지로 발굴된 동해 송정동 유적의 범위는 약 416,000㎡ 정도의 규모이며 1,600호의 집이 거주한 흔적이 발견돼 대규모 마을을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사회구조가 있었다는 것은 이 지역 일대가 실직국이나 아니면 연맹왕국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했다.


영동 남부 지역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중국 침략의 거점을 삼기 위해 북한 지역을 개발해 전체 산업의 대분분을 건설하다 1930년대 후반 이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36년 삼척개발계획 수립하고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영월화력은 1937년 5만 KW-5만 5천 Kw 전기를 생산해 남쪽과 삼척 공업지역 전송하기 시작했다. 삼척 탄광개발 (도계지역-철암 장성지역) 이 1936년에 시작되고 반출항만 개발 묵호항(1937.10.14 총독부 고시 733호 발견)이 개항한다. 이후 화학공장 건설로 북삼화학(질소비료등) 현 동부메탈이 들어서고 제철소 고레가와제철소(삼화제철)가 1943년 남한 최초로 세워진다.


육지와 해상교통이 편리해 상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농업은 전천과 마상천 유역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 총 경지면적 14.55㎢ 가운데 논 4.59㎢, 밭 9.78㎢로 밭이 많다. 도로 확장, 산업단지 조성, 항만 확충, 택지개발 등으로 농경지 · 농가가구 및 인구 등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수산업은 항구를 끼고 있어 일찍부터 발달했다. 묵호항은 일찍부터 어업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울릉도를 왕복하는 여객시설이 있다. 밖에 천곡 · 어달 · 대진리의 소규모 항구 3곳이 있다. 주요 어획물은 오징어 · 노가리 · 꽁치 · 미역 등이다.


동해시 남부 일대에 양질의 석회석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 국내 최대 규모의 시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동해항(북평항)에는 시멘트 전용 부두시설이 갖추어져서 컨베이어벨트시스템에 의한 시멘트의 직접 선적이 가능하다. 그 밖의 제조업으로 금속기계 · 화학 · 비금속광물 · 식료품 · 제재 · 종이 · 인쇄 · 전기 · 전자 · 토목 · 건축자재 등의 업체가 가동 중이다. 동해항에는 금강산 항로 개설 시 사용되었던 여객시설도 갖추고 있다.


동해시는 삼척과 더불어 북평산업기지(北坪産業基地)의 중심지로서 기반시설을 갖추었다. 국가공단에는 조립금속 · 기계장비 · 화학석유 · 1차 금속과 기타 제조업이, 지방공단에는 석유화학 · 1차 조립금속 · 기계장비 · 음식료와 기타 제조업이 입지 해 있다. 식수는 달방동에 달방 댐을 막아 공급하고 있으나 풍부하지는 못한 편이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이루어져 1770년대, 1830년대에 북평장이 3 · 8일에 개설되었다. 1912년에는 묵호장이 5 · 10일에 개설되었다가 1923년에 폐쇄되었고, 1926년 다시 부활되어 4 · 9일에 개설되었다. 1938년 다시 폐쇄되었다가 1963년에 비로소 상설되었다. 1976년에는 북평 · 묵호장이 모두 상설되었고, 1994년 동해시 상설로 되었다.


북평장날에는 인근의 근덕 · 도계 · 미로 · 묵호 · 임계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수산물 · 농산물 · 청과물 · 축산물 · 의류 · 일용잡화 등이 주로 거래되어 이 지역 상업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묵호항과 동해항은 영동 해안지방의 관문으로서 1941년 8월 11일에 묵호항이, 1979년 2월 28일에 동해항이 각각 개항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무연탄 · 시멘트 · 수산물 · 광산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유류, 목재, 곡물, 기계류 등이다.


교통은 태백권의 시멘트 · 석탄 등 자원을 수송하기 위한 영동선 철도가 전철화되어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통과한다. 영동선의 이도동에서 삼척선이 분기로 삼척과 이어지고, 시멘트를 수송하기 위한 송정∼삼화 사이의 철도도 영동선에서 분기한다. 시내에는 동해 · 묵호 · 망상역이 있다.


영동동해고속국도의 확장개통으로 강릉과 묵호를 연결하는 2차선 동해고속국도는 지방도로 전환되었다. 동해고속국도는 현재 양양과 동해간 4차선으로 확장개통되었으며, 강릉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여객은 물론 물류 유통에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특히, 묵호∼포항 간의 7번 국도가 4차선 확장사업이 진행되면서 동해 · 포항 · 울산 · 부산을 연결하는 남북교통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정선과 연결되는 42번 국도도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으며, 묵호항의 향로동에서 울릉도까지 연안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연구원은 “동해시는 근대 대한민국 중화학 산업의 출발지이며 해방 이후 에너지 산업인 석탄 생산과  물류의 중심항으로 묵호항이 있었다. 국내 철강 제선산업과 포항제철의 성공 신화의 시작의 뿌리가 되기도 한 지역이다. 국내 산업화 건설과 주거문화 기초를 다진 시멘트 산업과 물류의 중심항, 국내 화학, 비료 산업의 초석을 다진 지역이다. “라고 했다.


[옛날 TV] 영상으로 읽는 동해시의 근현대사!

https://youtu.be/Z01 urw2 RPro

편집, 홍협_동해학기록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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