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장터에서 시작, 설 대목 동해 북평장

92. 지역N문화

by 조연섭

13일, 고유의 명절 설을 사흘 앞둔 동해 북평민속오일장은 오전부터 설 대목 인파로 붐빈다. 생선 비린내와 군 밤 향이 뒤섞이고, 좌판마다 고운 나물과 잡곡, 제수용 과일이 층층이 쌓였다. 어물전 앞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동해안에서 갓 올라온 오징어, 명태, 가자미가 줄지어 놓였고, 손질을 기다리는 생선 위로 상인들의 능숙한 칼 놀림이 이어진다. 바다를 품은 도시답게, 북평장의 중심에는 늘 바다가 있다.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사고판다.

북평장 드론촬영_ 촬영 김병희DB

국내 3대 장터의 하나였던 북평민속오일장 상인회 남진수(남, 56) 회장은 장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북평장은 신선한 재료와 가격 경쟁력 등 모두 어물전이 인기입니다. 대목장인 오늘도 보십시오. 가장 붐비는 곳은 어물전 아닙니까?"


장터 문화 광장 옆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박광숙(64)씨는 북평장의 매력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가장 큰 매력은 가족들이 함께 나와 명절에 쓸 먹거리를 구하고, 장터에서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 오면 장을 보는 게 아니라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됩니다. 또한 우리 북평오일장은 장터와 300년 역사를 이어온 민속, 북평원님놀이가 자랑거리입니다. "


그가 꼽은 인기 장소 역시 생선장이다. 더불어 어르신들이 직접 준비해 나온 나물과 잡곡, 채소 좌판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했다.


"손으로 길러낸 것들이라 믿음이 간다"는 단골들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늘 시장 뒤편 장터 공연장에서 이어 온 북평원님놀이의 흥겨운 풍악 소리와 마을 어르신 중에서 선발된 원님 행차에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바라보던 여행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장터는 상업과 놀이, 생활과 문화가 뒤섞인 복합 공간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곧 공동체의 축제가 되는 순간이다. 전통 시장의 힘은 가격보다 관계다. 다섯 날마다 열리는 이 장은 지역의 시간을 이어 붙이는 생활의 기록 현장이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 모이고, 이웃과 안부를 묻고, 아이는 어른의 손을 잡고 좌판 사이를 걷는다. 300년 북평장에서는 장터를 지탱하는 뿌리인 신뢰, 관계, 체온이 보인다. 대형마트가 편리함을 팔 때, 전통 시장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판다. 온라인 쇼핑이 속도를 팔 때, 오일장은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를 판다.


동해역사문화연구회 윤종대 회장은 지난 2024년 북평민속오일장, '위크앤드 달빛포차'에 출연해 "기존 1796년(정조 20년) 으로 알려진 북평장은 잘못된 역사입니다. 허목(1595-1682)의 <척주지> 기록에는 무려 350년 전부터 3일과 8일에 북평에 장이 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윤종대 회장(2024.9.7 북평장 달빛포차)

북평민속오일장이 300년을 버텨온 이유가 여기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채우고, 마음을 채운다. 설은 집에서 시작되지만, 그 준비는 장터에서 완성된다. 동해 북평오일장은 오늘도 그렇게 사람을 모으고, 명절을 빚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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