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아카이브_ 동해
강원도 동해시 대진동 마을회관 일대가 며칠간 신명 나는 장단과 간절한 기도로 들썩였다. 지난 3일 바다의 풍요와 어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된 풍어제가 5일 오후 4시, 마지막 굿판을 끝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진동 마을운영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풍어제는 강릉단오굿 빈순애 예능보유자가 집전하며 전통의 깊이를 더했다.
바다와 인간을 잇는 오래된 약속, 풍어제
동해안 어촌 마을에서 풍어제는 거친 파도에 생계를 맡긴 이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다. 어민들은 예부터 어업철이 시작될 때마다 용왕과 가신(家神)에게 제를 올리며 무사 조업을 빌어왔다. 묵호와 어달을 잇는 대진동 역시 그 오랜 전통을 묵묵히 지켜온 마을이다.
대진의 딸에서 단오제의 꽃으로, 빈순애 명인의 귀환
이번 풍어제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집전자인 빈순애 인간문화재의 고향이 바로 이곳 대진동이기 때문이다. 1959년 대진리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무렵 운명처럼 찾아온 신기(神氣)를 마주했다. 어린 시절, 사철나무 가지에 강아지 방울을 매달고 춤을 추던 아이는 결국 학교 대신 굿판을 쫓아다녔다. 어머니의 거센 반대도 운명을 막지는 못했다. 당시 대진동을 찾았던 강릉단오굿의 거목 고(故) 신석남 명인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주었다.
빈 명인은 신석남 명인의 며느리가 되어 세습무의 길에 들어섰고, 남편 김명익 씨와 함께 평생을 굿판의 맥을 잇는 데 헌신했다. 고향 바다 앞에서 펼친 이번 굿판은 명인에게도, 마을 주민들에게도 남다른 감회를 선사했다.
3대를 흐르는 신명... 사라지지 않는 어촌의 기억
전통의 맥은 이제 딸 강신영 씨에게로 흐른다. 이번 굿판에 함께한 딸의 모습은 동해안 무속 문화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임을 증명했다.
5일 오전부터 시작된 마지막 굿판은 무녀의 유려한 춤사위와 악사들의 신명 나는 장단이 어우러지며 절정에 달했다. 어민들과 주민들은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올리며 가족의 건강과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 현장에서 만난 문화발전소 공감, 한지숙 국장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좋지만, 그저 바다 나간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는 게 제일 큰 소망"이라고 전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어촌 전통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대진동의 파도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도를 실어 나른다. 굿판은 끝났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어민들의 다짐은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곳 대진동 바닷가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