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를 공부하는 사람들

6. 논골담길 커먼즈, 관광보다 삶의 방식으로, 묵호살롱 야학을 상상하다

by 조연섭


도시가 변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외부의 자본과 행정이 계획을 세우고 공간을 바꾸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마을을 다시 읽고, 다시 말하고, 다시 엮어내는 방식이다. 나는 오래 갈 변화는 늘 두 번째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어제 묵호 어달항의 공방 "트루리"에서 열린 포트럭 파티는 바로 그 두 번째 변화의 문을 여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호를 살아내고, 기록하고, 만들고, 지켜온 작가와 활동가, 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군가는 음식을 준비해 왔고, 누군가는 작은 선물을 건넸다. 함께 차린 상 위에는 반찬과 빵과 과일만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묵호를 더 오래, 더 깊게 사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놓여 있었다.


한 지역의 미래는 때때로 회의실보다 식탁에서 먼저 열린다.

행정 문서보다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먼저 태어난다.

이날의 대화도 그랬다.


나는 우리의 가능성을 하나의 예로 들었다. 2019년 모두가 안된다던 송정막걸리 축제의 기획을 말하며 송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는 거리에 새로운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면, 그곳 역시 억지로 꾸민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골목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또 누군가는 동해를 찾는 이들이 ‘묵호’는 알아도 ‘동해시’는 잘 모른다는 점을 짚었다. 묵호라는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 반가운 일이지만, 이제는 묵호보다 동해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생활권으로 읽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문제의식은 단순한 지역 홍보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 브랜드를 어떻게 세우고, 방문자의 체류 시간을 어떻게 늘리고, 다시 찾게 만들고 깊이 오래 머물게 하는 관계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더 크게 공감한 것은 ‘행정 중심 관광’이 아니라 ‘시민 중심 관광’이라는 감각이었다. 관광을 행정이 기획하고 시민은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동네의 얼굴이 되고 안내자가 되고 매개자가 되는 방식 말이다.


지역마다 매니저가 있고, 그 매니저들이 자기 생활권의 이야기를 엮어내며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동해는 묵호 하나에 기대는 도시가 아니라 골목과 해변과 마을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관광객을 끌어오는 기술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관계의 윤리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묵호가 이제 단순히 ‘핫한 관광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다시 생각했다. 반짝이는 유행은 빠르게 사람을 모을 수는 있어도 오래 붙잡지는 못한다. 한 번 보고 가는 풍경은 기억에 남지만, 다시 오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곳에 내 친구가 있고, 나를 기억해 주는 얼굴이 있고, 나만의 자리가 있다는 감각. 그것이 생활관광의 본질일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큰 관광지는 한 번 보고 가면 그만이지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은 다시 오게 만든다. 이 말은 관광정책의 언어로 풀면 체류형 관광이고, 삶의 언어로 바꾸면 관계인구다.


그러나 관계만으로는 도시가 깊어지지 않는다. 관계를 오래 붙드는 것은 서사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묵호살롱 야학”을 제안했다.


왜 묵호가 변해야 하는가.

지금의 변화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풍경을 오래 간직하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공부해야 하는가.


나는 먼저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각자의 생업을 살아가고, 저녁에는 모여 묵호를 공부하는 시간. 건강을 공부하고, 마을을 공부하고, 명상을 공부하고, 문화를 공부하는 시간. 이 야학은 관광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관광 이전의 토양이다. 도시를 소비의 대상으로 보기 전에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느린 장치다. 지역을 말하기 전에 지역을 읽게 만드는 공부의 자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 먼저라는 점이다.


고증 없는 프로젝트는 오래가지 못한다. 지역학이 빠진 기획은 표면만 번지르르할 뿐 금세 닳아버린다. 묵호의 골목이 왜 지금의 모양을 갖게 되었는지, 바다와 항구가 마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어떤 층위를 이루고 있는지를 모른 채 새로운 콘텐츠만 얹는다면, 그것은 지역을 활용하는 일은 될지언정 지역을 살리는 일은 되지 못한다. 묵호 역사, 동해 이야기, 마을 사람 이야기 같은 콘텐츠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광은 결국 풍경을 파는 일이 아니라 해석을 건네는 일이어야 한다. 해석 없는 풍경은 배경이 되지만, 서사가 입혀진 풍경은 장소가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구술사와 지역학, 문화기획의 접점을 고민해 왔다. 지역의 경쟁력은 거창한 시설보다 기록의 밀도에서 나온다고 믿어 왔다. 묵호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더 깊은 독해다. 더 큰 축제보다 더 단단한 이야기다. 묵호살롱 야학은 바로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작은 강의가 되고, 작은 대화가 되고, 작은 기록 모임이 되고, 언젠가는 묵호를 해석하는 시민 연구자의 네트워크로 자랄 수도 있다.


지난 9일 저녁 트루리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묵호를 어떻게 관광지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라기보다, 묵호를 어떻게 한 도시의 생활과 철학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첫 문장에 가까웠다. 묵호 중심에서 동해 전체로 시야를 넓히자는 제안, 명소 중심에서 생활관광으로 전환하자는 인식, 장소만 보는 관광이 아니라 일출과 낮과 노을과 밤을 엮는 시간 관광의 상상, 행정 주도가 아니라 시민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운영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 기반 지역학이라는 철학. 이 다섯 가지 흐름은 어쩌면 앞으로의 동해 문화생태계를 그려볼 수 있는 작은 설계도일지 모른다.


도시는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제안 하나, 누군가의 공감 한마디, 누군가가 싸온 음식 한 접시, 누군가가 꺼낸 오래된 기억 하나가 쌓이며 조금씩 방향을 얻는다. 어제의 포트럭 파티는 그저 잘 먹고 잘 이야기한 저녁이 아니었다. 그것은 묵호가 스스로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나는 그 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던 자리, 관계를 넘어 철학을 묻던 자리, 그리고 묵호를 더 오래 묵호답게 남기기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입 밖에 꺼내 본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 번의 감동이 아니라 다음 순서다.

다시 만나야 한다.

다시 공부해야 한다.

다시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묵호의 다음 변화는 더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더 깊은 공부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의 이름이, 언젠가 정말로 묵호살롱 야학이 되기를 바란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회원, 사진_ 조연섭
파티를 마치고, 사진_ 조석휘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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