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근이 기다려지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11. 논골담길 커먼즈

by 조연섭

스물한 해 전,

처음 문화원에 임용되던 날이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한때 그 조직은

‘출근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빨리 가고 싶은 곳’이었다.


아침이 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문을 나섰고,

출근길은 노동이 아니라

어떤 예감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만났을 때 생기는 설렘,

그리고

‘나는 아직 꿈을 잃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신이었다.


2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긴다.


축제의 밤,

비를 맞으며 지켜낸 무대,

사라질 뻔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붙잡던 순간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도시가 조금씩 살아나는 장면들.


그 모든 시간은

한 사람의 직장 생활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한 장이 넘어간 뒤

나는 다시 작은 문을 열었다.


논골담길 커먼즈.


이름부터가 이상한 공간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더 큰 책임을 품고 있는 곳.


그곳에 책상 하나 놓고

의자 두 개를 마주 앉히고

바다를 창으로 들여놓았다.


그리고 한 달.


낯설던 공간이

어느 순간

익숙한 리듬을 갖기 시작했다.


어제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맑아졌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일 빨리 나가고 싶다.”


그 한 문장이

21년 전의 나를 불러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의 본질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좋은 직장’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곳이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가.”


출근이 의무가 아니라

기대가 되는 순간,

그곳은 이미 직장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그런 공간은

크기나 조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관계, 그리고 나의 방향성으로 만들어진다.


논골담길 커먼즈는

아직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곳은

다시 한번

내가 출근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장소라는 것.


아마도 인생은

이런 반복인지도 모른다.


꿈을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이름의 공간을 짓는 일.


그리고 그 공간이

나를 다시 부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조금 일찍 문을 나선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다시

출근이 기다려지는 사람으로.


북토크 준비중인 논골담길 커먼즈, 사진_ 조연섭
논골담길 커먼즈 삼실 일부,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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