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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Jul 30. 2023

동해 추암, 해양신앙 성지였다.

7. 동해학아카데미 문화학당

동해 추암, 해양 신앙 최고 성지

27일 동해문화원 동해학 아카데미 열한 번째 문화학당 강사로 나선 강릉원주대학교 이상균 교수는 과거 “동해 추암은 신라에서 바라본 <북해>이며, 제사 장소인 <제장>이자 삼국사기에 나온 실직의 <비례산非禮山>으로 추정한다.”라고 했다. 빼어난 일출 경관과 촛대바위로 널리 알려진 현 동해시 추암은 상고시대의 실직(곡) 국, 신라 때에는 실직주(군)에 영속된 곳으로 1980년 동해시로 편입되기 전까지 지금의 삼척시(전 삼척군)에 속한 지역이었다.

어룡 모시던 천연석 제단 기록 발견

이날 이교수는 바다짐승 시조 격의 가장 높은 지존, 신체로 말하면 어룡인 <골매기어씨존오>를 모시고 제사하던 천연석 제단이 1967년까지 있었다는 제단기록(1967년 북평고등학교 박동인 교사, 37세)도 공개했다. 추암마을은 연말에 회의를 열고 제관을 선출하고, 정월 1일 오전 1시에 30대 이상 부정이 없는 사람이 모여 동제를 지냈다. 골매기는 액운을 막는 골매기 할배, 할매 등으로 칭하고, 조부, 모의 뜻이 아니라 마을 입향시조 등의 조상을 의미한다. 골매기를 모신 것으로 보아 <골매기 당제>라 불리는 <동해안 별신굿> 형태의 당제가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추암은 <용신>과 소에서 시작된 <신우>의 전설 등 해양신앙이 가장 복합적이고 오래 전승되어 온 해양신앙의 최고의 성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부사가 주관하여 기우제를 지냈던 당시 삼척부의 대표 제장이었고, <동해사>라는 사묘가 존재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북해 제장과 상관성을 갖는다.

추암, 재지 세력 집단 거주 유물 대거 발굴
추암고분 출토 유물

추암은 신라의 재지 세력이 집단으로 거주했으며 사실을 방증하는 근거는 추암지역(추암, 구호)에서 대거 발굴된 신라 고분군이이다. 북평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추암지역에서 신라 고분 70기(추암 59기, 구호 11기)가 발굴 조사됐다. 전체적인 고분의 축조 시기는 5세기말에서 7세기 중엽이다. 이 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 중 주목되는 것이 있다.

추암동 가-21호분에서 출토된 <동관>과 <청동 장신구>, 구호동 5호분에서 출토된 <각배>와 <각배기대>, 1992년 발굴조사 완료 후 구호동 고분에서 추가로 수습된 <양이부발형토기> 및 <유공발현토기>이다. 모두 강원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이다.동관은 4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피장자의 머리에 착용된 상태로 청동 장신구와 함께 수습되는데, 6세기 후반으로 편년 된다. 동관과 청동 장신구는 제의용을 추정되고 여성 피장자는 일종의 종교 주제자 성격 무속인(Shaman)으로 이해된다. 각배는 5세기말~6세기 전반, <양이부발형토기>와 <유공발형토기>는 6세기 전반으로 보인다. 이 토기들은 매우 희소해 생활용기나 위세품으로 매납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제기로 확인된다. 이 유물들은 고분 축조집단이 신사 재지 세력의 일부가 제의 관련 특수집단일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조사된 수많은 신라 고분 중 유일하게 실직 치소의 북변인 추암지역 고분에서 샤먼(무속인)으로 추정되는 피장자가 확인되고, 제의와 관련된 희소 유물이 여러 점 출토된 것은 추암지역이 제의와 관련된 신라 재지 세력에 의해 무속 의례가 행해지던 곳이었다는 점을 논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사료된다. 다만, 이를 단정할지라도, 추암지역이 북해 제장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이다.

신라 사전의 모든 제사는 지역세력의 연고지와 관련되어 있고, 사전의 정비는 단순한 제사상의 문제를 넘어 신사 사회의 중앙집권화를 수반하는 종교의 정치와 현상이었다. 신라 <명산대천제>는 지역 수호신에 대한 제사였고, 재지 세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신라는 중앙집권적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지역에서 행해졌던 <명산대천제>를 사전으로 정비하여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추암지역에서 행해졌던 무속 의례는 사전의 정비과정에서 유교식 북해 제장의 제사로 재정립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명산대천제(名山大川祭): 전국 각지의 산천 23개소에서 지내던 정기 제사 및 기우 등을 위한 비정기 제사.
결론

사해에 제사하던 제의 대상이 사해용왕인 해룡이라는 점에서도 추암이 주목된 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해양신앙이 가장 복합적이고 오랫동안 전승된 흔치 않은 곳이 추암이다. 추암은 용추에서 지명이 유래되기도 했고, <해룡>과 더불어 <신우>나 <빈우>와같이 희소한 해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등 삼척에서 가장 다양한 해양 신 앙이 전승되었다. 삼척부사 주관의 기우제가 행해지는 대표 제장으로 지존 격 해 신이 좌정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 전통은 추암지역 동민들이 <성황산>이라 불 리는 추암의 제단에서 <골매기어씨존오>인 어룡을 모시고 지내던 동제로 이어져 현대까지 전승되었다. 이 사실들의 연원은 북해 제장의 유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조선시대 추암에 있었던 <동해사>가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도 사전의 규례가 있었고 동해사는 국가가 동해의 대표 제장에나 부여할 수 있는 사묘의 명칭이었다. 당시 동해사는 민간의 신당 등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고, 그런 사례도 없었다. 예로부터 해양 신앙의 최고 성지중 한 곳이었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 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암에서 동제를 지내던 제단을 <성황산>이라 한 것은, <비례산>이 성황 제단과 습합 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을 것으로 해석된다.

<비례산>이 두타산이라는 설도 있으나 강의에서 이교수는 “비례산 지명 발상지 또한 추암지역으로 추론된다. 추암지역에서 행해진 무속의례가 유교적 규범의 산천제로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서 음사인 <비례>로 규정되고, <비례>란 지명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더구나 다양한 사례와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추암이 <산>으로 지칭되어도 전혀 무색함이 없다. 이 러한 점들은 추암에 남아있는 북해 제장 잔영으로 보이며, 추암이 비례산으로 불렸을 가능성의 방중으로 생각되고 <비례산>은 <추암>으로 여겨진다.”라고 했다.

추암해암정 배경 동해문화원 실경뮤지컬 장면, 사진_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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